승용차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볕에 에어컨이 있는 차 안도 쾌적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땀이 흘렀다. 2010년 8월 21일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이포보 건설 현장은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지상에서 27미터 올라간 이포보 위에서 농성 중인 환경운동 활동가 3명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통화도 하루에 딱 15분만 가능하단다.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활동가의 전화기와 카메라 기자의 망원 렌즈를 통해 나는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접촉할 수 있었다.
"왜 올라가신 건가요?"
"우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론기구와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까지 받아들여지는 바가 없기 때문에 저희는 이곳에서 우리의 주장을 계속 좀 해볼 생각입니다."
이 더위에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서 31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치고는, 염형철 사무처장의 목소리는 쾌활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밑에서 기다리는 환경운동연합의 다른 회원들의 표정이 더 어두웠다.
4대강 반대가 '자기 일'도 아닌데…게다가 법원에서 퇴거 명령까지 받았는데…사업 추진의 옳고 그름을 떠나, 목숨을 걸고 4대강을 반대하는 이들의 자세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경이롭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 이포보 주위에는 인근 주민이 모여들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머리에 얹은 파란색 선캡이 인상적이었다. 군복을 입은 분들도 눈에 띄었다. 여주군이 나눠 준 보도자료에는 '인간 띠 잇기'와 '만세 삼창'을 계획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일사불란한 집회는 아니었다.
경찰은 순찰차를 타고 주민 사이를 가로지르며 "군민 여러분, 파사 성 주차장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집회 안내 방송을 맡았다. 도로를 활보하는 군민들의 '방송차'에선 "1천 5백 년 만에 여주 발전의 기회"라는 구호도 들려왔다.
이포대교 위에서 만난 엄복현 할아버지는 "여주군민은 80-90%가 찬성을 했는데 일개 환경 단체가 저러는 거는 국기 문란행위에요. 우리나라 법이 너무 물러요."라며 개탄을 금치 못했다.
"여주 군민은 단양쑥부쟁이보다 여주 경제살리기를 원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이포보 건설이 '자기 일'인 사람들이 간절하게 4대강 사업 추진을 바라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은 경이롭지 않았지만, 너무나 쉽게 이해가 됐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목숨을 거는 사람들. 자기 일을 방해받는 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 두 집단이 대치 속에 남한강 하류의 작은 마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이포리는 긴장이 감돌고 있다. '자기 일'은 아니지만 환경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명분과, '단양쑥부쟁이'의 생명보다는 내가 사는 터전의 발전과 개발을 바라는 욕망이 맞서고 있다.
'자기 일'도 아니고, 목숨을 걸만한 명분도 없는 기자는 그저 두 집단의 대치를 기계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할 뿐이었다. 설사 어딘가 높은 곳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극적인 대타협에 성공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농성한 활동가들과 '자기 일'을 훼방 당한 이곳 주민 사이에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날 양쪽은 모두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경찰은 집회 인원만큼 많은 경찰력을 배치하며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 두 집회는 1시간의 시차를 두고, 왕복 2차선 도로 건너에서 충돌 없이 개최되고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포보 짓는 건설업체의 움직임은 여전히 바빴고, 보 위에 남겨진 3명도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