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없는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숨쉬게 만들고, '이것들도 인간들인가' 싶은 사람들에 치이며 사는 '요즘 여기'의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는 영혼을 부여해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꼼꼼하게 분석적으로 보기보다는 그냥 객석 의자에 몸을 푹 파묻은 채 자꾸 줄어드는 상영시간을 아까워하며 봤습니다. 어른들을 눈물짓게 만들고 아이들을 꺄르륵 넘어가게 만드는 마법은 몇 번을 다시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토이스토리3]는 1편이 나온지 15년 뒤라는 자연적인 시간의 경과를 그대로 적용해 카우보이 인형 우디의 주인공 앤디가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는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사람 나이로 치면 8, 90의 고령이 된 애완견의 애처로운 모습도 사실적으로 그려집니다. 이제 주인은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었다는 의미 이외에 더 이상 장난감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들은 다락방에 쳐박히거나 탁아소에 기증되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운명이고 영화는 앤디의 집과 탁아소, 매립지를 무대로 모험이 펼쳐집니다. 명민한 머리로 위기탈출 계획을 짜고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이 깊은 우디는 3편에서도 듬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존적 고민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깊게 빠지지는 못하는 용감하기만 한 버즈 라이트이어가 스패니시 버전으로 변신하는 모습이 많은 웃음을 줍니다(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 코너의 '곤잘레스'와무척 비슷합니다).
손과 발은 물론 눈, 코, 입까지 탈착 가능한 고구마 인형이 토르티야를 몸삼아 흐느적 거리는 몸개그도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1, 2편에 등장했던 주요 장난감 이외에 3편에 새롭게 등장하는 빅 베이비, 고슴도치, 바비 인형과 짝을 이루는, 패션에 목숨거는 훈남 인형 등 등장하는 모든 장난감들에게 개성있는 캐릭터를 부여해 영화가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의 크기는 [업]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을 대사없이 축약해 보여주는 장면이나 [월E]에서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장면의 가슴 벅찬 느낌처럼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백미라고 됩니다.
이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을때 어떤 방식으로 이별하느냐에 따라 망각에 맞서는 아쉬움과 회환이라는 감정의 진폭이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하며 과거에 사로잡혀 이별해야할 때 이별하지 않으려는 것은 집착이라는 괴상한 괴물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이 귀여운 장난감 캐릭터들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제 마음 속에서 이별하더라도 자꾸 뒤돌아보며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