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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화가의 의도를 담다 - 현실과 진실, 그리고 사실

‘아시아리얼리즘'전 네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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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평면에 선과 색, 면, 질감 등으로 표현된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미술은 좀 더 넓은 뜻이 있는데요. 평면에 그려진 그림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표현된 결과물입니다. 모든 표현이 미술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수준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어쨌든 이 표현이란 특정한 과정을 거쳐서 생겼기 때문에 그림 속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녹아들어 가게 됩니다. 우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작가의 개성이 그림 속에 담기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그림을 자세히 공부하다 보면 개성이나 실력 같은 작가 개인의 차별성뿐만 아니라 정말로 다양한 상황이 그림 속에 녹아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보여주는 스펙트럼 같이 여러 빛깔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림은 사람이 그리는 결과물이니까 결국은 작가가 처한 상황이 작용합니다. 어떤 작가들은 이런 요소도 없애보려고 우연의 결과물을 동원하기도 하는데요. 리얼리즘, 그러니까 사실주의 그림을 얘기할 때는 이 부분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작가는 어떤 시대적 상황 속에 처해 있습니다. 이 시대적 상황에는 정치적 상황이나 문화,  경제적 현실 등도 포함되는데요. 이런 시대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상황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바로 설명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작가는 움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상황 속에서 얻게 되는 경험의 양이나 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한 나라의 상황만 고려하기도 힘듭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거나 유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려고 노력한 작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특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시대적 상황임은 분명합니다. 어떤 시간대, 장소, 사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받게 되는 영향들은 그림 속에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작가가 알고 지내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작가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작가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그의 작품세계에도 개입하게 되는 것이죠. 꼭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그려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서 작가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달라집니다. 어쩌면 길을 지나다가 인상 깊게 보았던 사람이 있다면 역시 작가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 영향력이 그림에도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작품에 걸리게 되는 공간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것도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넓은 장소인지 아니면 좁은 장소인지, 또 개방된 곳인지 아닌지, 건물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등 장소와 그림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려지기 전에도 그렇고 그려진 후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작품에 영향을 주는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해서 뭐라고 특정 짓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평’이란 분야는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을 글쓰기로 표현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뭐라고 특정 짓기 힘든, 그리고 작가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그림으로 표현한 결과를 다시 말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제대로 그림과 대화하는 비평 글을 보면 그림을 보는 감동과 경험의 폭을 무한히 넓혀 주기도 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요.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작가가 그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것들입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단순히 작가의 개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너무나 다양한 영향관계가 스펙트럼처럼 펼쳐질 수 있는데요. 이것들을 다 펼치다 보면 정작 이해하고 싶은 작품과 멀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둘러싼 작가의 환경이나 여러 가지 배경, 상황, 영향을 준 것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림과 가까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영향관계를 따라갔을 뿐인데 왜 그림을 이해하는 게 더 어려워졌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림에는 무엇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면 속는다고 하죠. 그림도 언어이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얘기하면 우리는 쉽게 속게 됩니다. 언어 중에서도 예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말로 속이는 것보다 오히려 강한 힘을 발휘하고 쉽게 알아차리기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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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먼저 쓴 글에서 미술작품이 역사학의 연구재료로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이런 특성 때문입니다.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들이 연구 재료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림은 가장 그 시대를 알기 쉽게 표현된 언어인 동시에 작가의 의도된 ‘거짓말’이 포함된 결과물입니다. 더군다나 예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그림이라는 것은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일 텐데요. 그 뛰어난 정신이라는 것도 일종의 작가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은 사기다'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의 표현일 것입니다.

작가에 따라서는 이 '거짓말'이 '시대를 뛰어넘는 정신'이 되기도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그림이 훌륭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미술도 일종의 언어라고 한다면 뛰어난 화술과 뛰어난 거짓말이 통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순수한 예술적인 정신이 만든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림을 보는 대중을 현혹시키는 작품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림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놔 둘리 없겠죠. 경우에 따라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그림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특정한 생각을 하도록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일본작가 시미즈 토시가 그린 '말레이가교 공병대'라는 그림을 보면 작가의 거짓말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시미즈가 그린 이 그림은 사실 신문에 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일본 군부가 말레이 진격에서의 영웅담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던 겁니다. 일종의 전쟁 기록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42년 일본이 말레이 반도를 종단하고 싱가포르 공격을 개시 했던 상황이 배경입니다. 영국군이 후퇴하면서 폭파시킨 다리를 일본 공병대가 다시 복구하는 모습을 묘사 했는데요.

당시 공병대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 작업을 이틀 만에 완성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원래의 사진과 그림을 비교해 보면 뭔가 달라진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는 없었던 말레이 현지인들이 그림에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일본군의 말레이 반도 공격에 말레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도운 것처럼 그림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일본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런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당시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합리화하려고 애썼는데요. 일본이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시미즈는 사실적인 기록화를 위장한 ‘거짓말’을 그렸던 것입니다. 당시 일본군의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레이가교 공병대 / 시미즈 토시, 일본 1944 재미있는 것은 시미즈 토시가 추상적인 표현을 주로 했던 작가라는 점입니다. 스무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20여년을 생활하면서 현대서양미술을 적극적으로 배웠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 주로 있던 시미즈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그림을 그리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말년에는 '거룩한 전쟁그림 전시회'에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는 군요. 그림이 가지는 영향력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그림을 이용해 자국 내에서의 입지를 다지는데 활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선전, 선동에 이용하는 대표주자는 아무래도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처음에는 혁명을 이끌기 위한 미술인들의 역할론에서 시작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그것입니다. 물론 나라의 통제를 받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그림들을 보면 이념이나 강령을 그림 속에 표현하려고 애쓴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작가는 사실적인 인물묘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이념을 표방하는 인물은 사회주의 영웅일 것이고 그런 인물을 그리는데 추상적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문화혁명시기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원화라는 작가의 '구리광산의 첨병'이 그 예입니다. 우원화의 그림 속에서 구리광산의 노동자들은 더 이상 피폐한 빈민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주의 강령에 걸 맞는 영웅이며 산업전선에 싸우는 사회주의 전사입니다. 구리광석을 캐고 있는 광부를 밝고 빛나게 그림으로써 이런 느낌을 강조했고, 마치 총을 들고 전쟁이라고 하는 듯한 자세가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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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광산의 첨병 / 우원화, 중국 1971

뭔가 의도된 거짓말이 그림이라는 결과로 표현되었다는 얘기를 해 보았는데요.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그림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가 괜히 어렵게 설명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화가라는 존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고민하는 지성중의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그 고민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 되느냐에 따라서 사회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책임을 다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화가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일지 고민해야하고 그 고민이 그림으로 그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진실의 표현이 반드시 민중미술 이어야 한다거나 하는 규칙이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휴식과 위로를 선사할 수 있는 그림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역할도 다양하듯이 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 싫어하지만 직시해야하는 현실을 그려내는 화가도 중요하고, 우리 안의 추상적인 꿈을 그리는 화가도 중요합니다.

마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듯이 그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관의문턱이 많이 낮아졌지만 입시, 취직, 승진 공부만 하던 우리들은 아직 미술이 멀게만 느껴지는데요.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영화 보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듯이, 잘 몰라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미술이었으면 합니다. 다른 점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본 경험은 많은데 비해 그림감상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정도인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의 미술도 낯설지 않을 정도의 경험을 갑자기 쌓을 수는 없는데요. 마치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만 찾아보듯이 미술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으면 합니다.

'아시아 리얼리즘'전의 작품을 가지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해 보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사실적인 그림을 설명하는 게 이해하기 쉽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게다가 작품들이 아시아와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상황과 같이 맞물려 있는 중요한 그림들이기도 합니다. 요즘 영화 ‘인셉션’을 설명해 놓은 많은 글들이 있는데요. 그 글들을 보고 영화를 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기회를 가지는 재미를 느껴보시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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