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일 강제병합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히며 조선왕실의궤 등을 반환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반성'...일본이 반성해야 할 것이 한일 강제병합 뿐일까요?
지난 주에 업무차 일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두 개의 한국인의 무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과 한국인들의 무덤을 보았습니다.
◆ 왜란의 아픔 '귀 무덤'
먼저 들른 곳은 교토시에 있는 이총(耳塚), 이른바 '귀 무덤'이었습니다.
귀 무덤은 한마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전리품으로 베어간 조선 백성들의 귀와 코가 묻힌 곳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장수들의 전공(戰功)을 파악하기 위해 이런 만행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목을 베어갔는데 '운송'이 어려워 '부피가 적은' 귀와 코를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이 곳에 묻힌 조선인들은 12만여 명,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그 수를 줄이기에 급급하다고 합니다.
울분을 더 참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귀 무덤 바로 앞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받드는 신사, 즉 사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귀 무덤은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작은 울타리만 쳐져 있습니다. 옆에는 이총 공원이라고 해서 조그마한 아이들 놀이터가 있고, 뒤쪽으로 주택가입니다. 얼핏 봐서는 이곳이 사적(史蹟)이라는 사실도 알기 어렵습니다.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는 대로변에서 위용을 자랑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의 면적은 적어도 귀 무덤의 수십배는 돼 보였습니다. 귀 무덤은 일본인 관리인 한명이 외롭게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도요토미 신사는 이 앞에서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그야말로 일본인들의 관광 명소였습니다.
◆ '일본 문화의 시조' 왕인박사의 묘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들른 곳은 오사카에 있는 왕인박사의 묘였습니다.
왕인 박사는 잘 아시다시피, 1,600년전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와 문자를 전했던 백제 인물입니다. 일본 문화의 시조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 준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한국인들의 무덤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굳이 연결 짓자면, 한국인한테 문화를 배운 일본인들이 거꾸로 한국인들을 살해했던 셈입니다.
왕인 박사의 묘 역시 방치돼 있다시피 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박한 규모로, 그것도 주택가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마땅한 표지판도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방문객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일본 현지에 있으면서 일본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워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두 무덤을 아예 우니나라로 들여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조선왕조의궤 뿐 아니라, 이 두 무덤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