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집시의 설움 - 로마인들의 현실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집시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애수? 낭만? 요즘 프랑스에서는 설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앞으로 석 달 안에 집시들을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서 모두 쫓아내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는 현재 공식적으로 50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100만 명 정도의 집시가 있다고 하는데, 3분의1 정도만 일정한 주거지 없이 떠도는 원론적인 ‘집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캠핑카에서 살면서 몇 년에 한 번씩 특정한 장소를 정해 대규모로 회합을 갖기도 합니다.

나머지, 그러니까 30만 명 이상은 집시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대도시 주변에 한국의 60~70년대 판자촌을 연상시키는 환경의 정착촌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프랑스 치안 당국은 바로 이들이 도시 범죄의 온상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하면서 이 지역의 집시들이 대거 프랑스로 건너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600여 군데의 집시 정착촌이 있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우선 300 군데가 폐쇄 대상입니다.

어떻게 보면 집시들은 정착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될 수도 있는데, 사르코지 대통령이 최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대상을 이민자와 집시로 잡았기 때문에 당분간 집시의 설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에는 공식적으로 집시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대신 공식 명칭이 유랑민 Gens du voyage입니다. 19세기 말엽 궁핍해진 농민들이 유랑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행정용어로 '비정착소수민족'이라는 "중립적인" 표현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집시들은 로마 Roma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불어로는 롬Roms이라고 하는데, 이 글에서는 편의상 로마라고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수도 Roma와 같은 표기여서 헛갈릴 수 있는데, 영어나 불어로는 집시라는 뜻입니다. (이탈리아의 로마는 영어나 불어 모두 롬Rome이죠). 이탈리아 로마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집시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971년 세계 로마인 대회에서 공식 채택이 돼서 지금은 집시의 통칭이 됐습니다.

이들은 11세기 초엽 인도의 북동부 지역에서 이동을 시작하는데, 상당수가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부근) 지역에서 붙잡혀 노예로 팔려나가고 나머지가 유럽 각지로 흩어집니다. 이 때 보헤미아 지역에 정착한 집시들이 현재 로마인들의 원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로마인들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헝가리 등지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에 거주하는데 (90% 정도는 정착해서 산다고 합니다) 1,00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남부의 까마르그 지역으로 온 집시들은 지딴느 Gitans(스페인어로는 히따노 Gitano)라고 하고, 게르만계 언어권에서는 마누쉬 Manouche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많이 쓰는 집시 Gypsy라는 표현은 영국에서 유래했는데,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인 줄 알고 Egyptian이라고 부르다가 'E'가 떨어져나가면서 생긴 말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하여튼 집시에 대한 명칭 대부분이 경멸적인 어감이 담긴 표현이어서 집시들은 '로마'인이라는 표현을 가장 선호한다고 하는데, 로마인들의 설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