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7시, 주말을 앞두고 야근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서울 중화동의 한 아파트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목동에서 현장까지 한시간 반이나 걸려서 도착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이에 피의자가 순순히 자수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정말 짜증나도록 덥더군요.
#1.
사건은 이렇습니다.
20대 남자가 지난해 부터 한 여자과 교제해 왔는데, 이 여자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둘 사이가 멀어지고 여자가 남자를 만나주지 않자, 남자는 여자의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이미 한번 집앞에서 부모에게 면박을 당하고 여자친구를 만나지 못했던 남자는 이번엔 흉기를 들고 찾아와서…. 남자는 자신을 막아서는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를 인질로 잡고 경찰과 오랜 시간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남자는 그 시신조차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당장 체포될까봐 문도 제대로 열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고는 오로지 여자친구와 얘기할 시간을 갖고 싶다는게 요구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벽 2시까지 대화만 요구하던 이 남자는 스스로 아파트를 나왔습니다.
무슨 대화를 그리 오래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너무도 태연하게 '그냥 대화했어요, 결혼 얘기했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아파트 밖에서 여자가 무사히 풀려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가족과 경찰들, 그리고 기자들도 대화 좀 해보겠다고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른 그 남자의 태도에 기가 막혔습니다.
#2.
시간이 지나면서 기자들이나 경찰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자정까지 시간을 달라더니, 새벽 1시가 되도 남자는 나올 생각을 않더군요.
그렇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아파트만 바라보다 갑자기 주변을 봤더니 아파트를 에워싼 이웃 주민들의 수가 오히려 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런 미친 놈이 다 있나, 빨리 나와라', '남자 잘못 만나서 온 가족이 저런 험한 꼴을 봤다'는 말들로 후텁지근한 금요일 열대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자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고 30여분이 지나 아주머니의 시신도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새벽 2시, 인산인해를 이뤘던 그 아파트 앞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까치발 들고 서 있던 아주머니, 다른 아파트에 사는 친구까지 불러 나무 위로 올라간 중학생들...
저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팔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공항에 도착한 한류스타나 아이돌 그룹을 맞이하는 팬들의 모습 같더군요.
어쨌든 어마어마한 취재 열기(?) 때문에 주민과 경찰 사이에 껴 있던 저는 발이 여러차례 밟혀 피멍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대부분 이 가족들과 숨진 아주머니의 직장 동료들이 뉴스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던 겁니다.
어쩔줄 몰라하며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울고, 또 경찰이 한시간 간격으로 기자들을 상대로 하는 브리핑에까지 이들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누군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잔인한 소식인데도, 새벽이 되도록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중하기는 커녕 이 고인과 가족, 또 지인들에게 예를 갖추지 않더군요.
그저 한낱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3.
현장에서의 모든 취재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오니 새벽 5시였습니다. 한시간 동안 부리나케 졸음을 몰아내며 기사를 쓰고 방송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뉴스를 보고 있자니 이 기사 외에도 중부지방에 비가 많이 와 6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아침 일찍 무심코 TV를 켰을 시청자들에게 이런 암울한 소식만 전하게 돼 아주 많이 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