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셜리 쉐러드 전 조지아주 농촌개발국장입니다. 그녀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오해를 받아 얼마전 농무부에서 해고됐습니다. 그런데 인종차별 발언의 근거로 제시됐던(역시나 보수성향의 폭스 뉴스에서 공개됐다네요) 동영상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자 그게 인종차별 발언이 아니라 인종장벽을 극복한, 또 그렇게 하자는 취지의 대단히 좋은 발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인종'이라는 얘기만 나오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내 분위기에서 행정부가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게 탈이었습니다. 아주 발빠르게 쉐로드를 해고조치한 거죠. 하지만 동영상의 전체 내용이 나오고, 쉐로드의 진의가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그녀를 해고한 농무부나 그 과정에 간여한 백악관 처지가 난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신속하고도 화끈하게 사과하자'였습니다.
먼저 깁스 백악관 대변인입니다. 시점은 그제(21일) 낮입니다.
"미 행정부를 대표해서 사과합니다. 우리는 모든 진실을 알기 전에 그녀를 해고했습니다. 그녀를 사과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우리가 지금 빨리 반응하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부도 빨리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궁금한 것을 묻고 그 다음에 결정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녀를 해고한 책임자인 빌색 농무부장관의 사과는 훨씬 직접적입니다.
"쉐로드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습니다. 그녀는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과합니다. 다만 그녀를 해고하는 결정에 백악관측의 압력은 없었습니다.그녀가 농무부로 돌아와 일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깁스 대변인의 말대로 미국 정부가 진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대응하는 바람에 이 문제가 확산됐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실수도 아주 빨리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는 모습이 제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니까요.이런 제 생각에 점을 하나 더 찍은 게 오바마 대통령과 쉐로든 전 국장의 전화통화였습니다.
CNN이 동행취재하고 있는 와중에 차안에서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습니다.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쉐로드의 목소리도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화면은 나가더군요. 통화가 끝난 뒤 쉐로드 전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마치 같은 차를 타고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대해줬다. 나는 조지아주를 한 번 방문해달라고 했고,대통령은 복직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해달라고 했다. 좋은 대화였다."
그런데 LA타임스는 쉐로드 전 국장을 따로 취재를 해서 통화내용중 다른 부분을 공개했습니다. 대단히 솔직한 쉐로드 전 국장의 말입니다.
"나는 대통령에게 당신은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그 것도 자유로운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흑인차별이 유난히 심했던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서 흑인으로 살고 있는 나의 환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조지아주를 방문해서 시민단체 사람들도 만나고 그 목소리도 직접 들어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확답을 하지는 않았고, 그런 건의라면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건의해달라고 했다. 아, 대통령이 직접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다.통화내용을 전체적으로 보면 사과의 톤이기는 했지만..."
쉐로드 전 국장이 아직 복직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이번 파문이 다 가라앉은 것은 아니지만, 인종문제가 미국사회에서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오바마 행정부는 인종 문제에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 합니다. 이번 해고 결정이 조금만 차분하게 이뤄졌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덜컥 동영상만 보고 진상 파악도 하기 전에 해고결정을 내린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전과(?)도 있습니다.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해 하버드대 흑인 교수가 여행을 갔다 자기 집에 돌아왔다가 제대로 문을 열지 못하자 경찰이 출동했고, 그 과정에서 몸싸움과 설전이 일어나면서 급기야 백인 경찰이 이 흑인 교수를 수갑을 채워 연행을 해 간 일 말입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경찰을 향해 "어리석은 행동"으로 규정했다가 정당한 직무수행을 비난했다는 경찰관들의 항의에 급기야 "부적절한 용어를 선택했다."며 사과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쉐로드 전 국장건도 자칫 잘못했다가 괜히 커질 것이라고 생각해 백악관측에서 농무부에 압력을 넣었다고 추론할 만한 상황도 맞습니다. 빨리 싹을 잘라서 요즘 미국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인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악재가 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오바마 행정부 스스로 우려했던 지금 상황까지는 오지도 않았을 텐데, 역시 두려움이 잘못된 행동과 선택을 낳는 법인가 봅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정치적 의혹 사건들, 성희롱 사건들을 돌이켜 보고 당사자들의 대응을 상기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지실 겁니다.
다만 진실이,사실이 공개된 상황에서 미국 정부와 대통령의 반응은 대단히 적절했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언행은 태산같아야 한다는 한국적 정치문화와는 참 다르다는 거죠. 이번 쉐로드 전 국장 파문은 그렇게 저에게 미국과 한국 정치문화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