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의 공포
"3학년 1반에 서현이 있잖아? 걔 이번에 '납치' 됐대."
한 친구가 달려와 다급하게 급우들에게 이런 소식을 알립니다. 그런데 동료의 납치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왠지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아, 정말? 완전 안습이다. 1학년 때부터 납치는 진짜 싫다고 그러더니. 걔 어쩌니?" 사실 수능 수시합격자 발표가 날 때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 마다 납치괴담이 쏟아지니 시큰둥할 만도 합니다. 여기서 '납치'란 진짜 납치가 아니라 대학입시철 마음고생을 표현한 고3들만의 은어거든요.
요즘 고3들은 대입수시전형에서 자신의 평소 성적보다 하향지원한 곳에 덥석 합격하는 일을 '납치'라고 표현합니다.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는데, 기회비용을 모두 포기한 채 마음을 비워야하는 상실감이 잘 표현돼 있는 말이죠.
제가 고3이던 10년 전쯤 만해도 대입의 길은 특차와 정시뿐이었죠. 그 땐 '납치'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폭도 좁았죠. 수능에 올인해야 했으니까요. 다양한 인재를 뽑아야 경쟁력이 있다는 걸 대학들이 깨달은 뒤론 수시라는 게 생겼고, 이제 하나의 룰이 됐습니다. 수시와 정시 사이엔 중간항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입시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큰 기여를 했죠. 어떤 수험생이 수시전형을 준비하기로 했으면 어느 정도 정시엔 미련을 버릴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겁니다. 불꽃 튀는 경쟁 속에 조금이나마 입시경쟁의 과열을 줄일 수 있게 됐죠.
대입무법자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디선가 이렇게 자리를 잡은 룰이 취지대로 굴러가자 않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옆집에 사는 혜미가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 수시로 지원해서 합격을 했다고 가정합시다.
혜미는 합격을 하고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왠지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과감히 정시를 또 지원합니다.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합격을 하죠. 수시는 먼저 등록을 해야 합격자로 인정되니까 이미 대학 1곳엔 예비새내기 신분입니다. 그런데 정시에 합격한 곳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까운 겁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정시에도 등록을 해 버린다고 합시다. 수시 합격한 곳에 안가면 그 자리는 영영 비게 되지만 내 알 바가 아닙니다. 그리고 원하는 곳에 당당하게 진학한 채 행복한 대학생활을 시작합니다.
에이, 그럴 학생이 얼마나 되겠냐구요? 불행히도 우리 주위엔 수많은 혜미들이 있습니다. 지난 2008년과 지난해 '대학입시 복수지원 및 이중등록 위반자 현황자료'를 보면, 이런 학생이 2,700여명이나 됩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취합한 것을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이 입수해 세상 밖으로 나온 수치입니다. 2005부터 3년 사이엔, 무려 6,200여명이 이런 식으로 원하는 대학을 갔죠. '납치공포'없이 룰을 파괴하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 뭐라 불러줘야 할까요? 저는 '대입 무법자'라 부르고 싶습니다.
무너지는 입시의 룰
대입무법자들이 활개를 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사회는 학벌사회의 토대위에 대학들이 엄연히 한 줄로 서열화 돼 있습니다. 내 동생이나 조카, 자녀가 당장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봅니다. 무법자가 합격하고 정시합격한 곳으로 떠나버리면 결원이 생깁니다. 충원이 안 되니 원래 합격해야 했던 학생은 탈락하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숫자만큼 억울한 사람도 많았던 겁니다.
무엇보다 입시의 원칙이 무너집니다. 수시와 정시로 입시를 나누면 일단, 다양한 인재를 뽑는다는 장점이 큽니다. 또한 천상계와 사신계처럼 두 세계를 분리시킴으로써 학생들이 그나마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는 걸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중등록이 가능하단걸 아는 소수의 학생들이 있다면 어떨까요. 두 세계를 종횡무진할 수 있죠. 그러나 입시지상주의 사회에서 한 번의 기회를 더 가진다는 것, 더 정확히 한 번의 기회를 가로챌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데스노트'를 가진 만화 속 주인공 마냥, 심각한 입시 부정행위를 자행하는지도 모르는 무법자인 셈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