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임에도 일부 중부지방은 불볕더위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동안 때 아닌 가뭄에 시민들도 어리둥절했는데요. 오늘에서야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마철에 장맛비가 반가운 예년과 다른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부지방의6월 강수량은 평년보다 많이 적다고 합니다.
오늘의 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어제 기상청을 찾았는데요. 인근의 보라매공원 분수대에서는 아이들만의 피서가 어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저도 취재를 하면서 분수대 사이를 뛰어다니는 너무나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가 분수대에 뛰어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저는 체면 같은 사회적 얼굴만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나 봅니다. 분명히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얼마 전에 러시아 모스크바 분수대에 뛰어든 '어른'의 사진을 신문을 통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곳도 불볕더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솔직히 저의 용기 없음과 더불어 너무나 시원해 보이는 그 사진속의 주인공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분수대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또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분수대에 뛰어 들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겐 없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까 몇 년 전에 만취한 '어른들'이 분수대에 뛰어들어 놀던 모습을 취재 도중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깔깔거리며 즐거워하고 계셨지만, 아이들은 도망가고 주변의 다른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죠. 술을 드셨기 때문인지, 분수대에 온몸을 적셔가며 노는 것이 '어른'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모스크바 여인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생각을 거슬러 가다보니까 어렸을 때 친구와 비를 맞으며 신나게 뛰던 생각이 납니다. 갑작스런 비에 초등학교 정문은 우산을 든 아버지, 어머니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저와 또 다른 친구 한명만 아무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철없는 우리들은 서로를 향해 한번 웃어주고는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속의 물을 공 차듯 차면서 뛰어다녔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광화문이나 시청의 분수대는 없었지만, 집주변에 분수대가 있는 공원은 없었지만, 비를 온몸을 맞으며 낄낄댈 수 있는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는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물에 젖으면 안 되는 핸드폰도 없었고 사회적인 체면도 없었습니다.
사회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직장과 여러 가지 것들을 감사하지만 오늘은 비를 맞을 수 있는 자유와 분수대에 뛰어들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몹시나 그리워집니다. 산성비, 흙비 걱정도 핸드폰, 카메라 젖을 걱정도 잊고 한번 비를 맞으며 집까지 걸어가 보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