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전북만 3백여명 거부, 본격대립 시작
오늘(13일)부터 내일까지 실시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두고, 교육과학기술부와 진보 교육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 시행을 놓고 교육당국 간의 진짜 대립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일제고사는 이번 정부 들어 처음 시험이 시작된 2008년 이후 3번째 평가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생이 대상이죠. 고등학교 2학년들은 국영수만 보는데, 오늘이 끝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3은 국영수에 과학, 사회까지 다섯 과목을 내일까지 봅니다.
일제고사에 반대해 온 김승환 전북교육감과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학생들의 거부권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해왔습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학생은 전원 '무단결석'처리하라는 교육부 방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이들은 학생선택권 보장 차원의 대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라고 일선 학교에 지시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것이 위법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이들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맞받아 왔습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지난 8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주최한 전국시도교육감 회의에서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응시할 법적인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의무가 있는 것처럼 강제하고 그로인해서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피해다." 라고 말했습니다.
보통 3년째 시행되는 제도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무실해지거나, 이미 안정화된 제도는 기사화되기 힘들죠. 하지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시행 3년째인 올해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집계된 두 지역의 일제고사 거부학생 숫자만 312명입니다. 강원도에선 140명, 전북에선 172명의 학생이 학교에 나와 시험을 거부하고 도서관 등에서 독서를 하며 대체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일제고사 거부 하면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체험학습에 참가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행 첫해인 재작년 첫날 188명, 둘째날 149명이 불참했고, 지난해 시험 이틀 간 147명이 일제고사를 거부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정말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겠죠. (매일 속보를 써야할 저 같은 교육기자들의 업무량도 폭주할 걸로 예상됩니다.)
강원전북은 열탕, 경기는 온탕, 서울은 테마탕?
지난달 2일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은 6명이 당선됐습니다. 오는 11월 임기를 시작할 광주교육감을 제외하면 5명이 임기를 시작한 셈이죠. 이들도 일제고사 시행 등 그동안 원칙적으로 반대해 온 정책들을 시행에 옮기면서 서서히 온도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원과 전북이 펄펄 끓는 열탕이 됐다면, 서울과 경기는 알고보니 온탕이었다고나 할까요?
일제고사만 놓고 보면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정부 정책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는 "전수식 평가방식이 교육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공무원으로서 법령을 따라야 한다"는 말로 복잡한 처지를 표현했습니다. 결국 대체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일선에 지시하거나 하는 일 없이, 일제고사를 치렀습니다. 경기도에선 28명이 첫날 일제고사에 불참했을 뿐입니다.
같은 온탕이지만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조치는 복잡 미묘합니다. 마치 온탕은 온탕인데, 약초탕이나 아로마탕 처럼 테마가 있는 온탕처럼 보입니다. 물론 일제고사를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에 교육과학기술부와 정면충돌을 피해야하는 딜레마가 만든 독특한 결정이었죠.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일제고사를 하루 앞둔 어제(12일)까지도 일제고사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에 대한 입장표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연 점심때 쯤 입장이 나왔습니다. "체험학습 참가로 시험을 빠진 학생은 교육부 방침대로 결석 처리한다."는 거였죠. 서울시교육위원회 시정질의 답변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라디오 발언도 취소가 되나요?
입장을 정리하는 발언은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시선집중>에 출연한 교육과학기술부 책임자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12일 이 프로그램엔 양성광 교과부 교육정보정책관이 출연했죠.
그는 "학생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자의에 의해서 시험을 안보는 경우 도서관에서 있게 한다든가 대체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평가를 회피하거나 불참을 유도할 목적으로 대체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말했죠.
곽 교육감은 이 말을 인용하며 우선 학교에 출석한 뒤 시험에 거부한 학생은 '대체프로그램'을 실시하라고 일선학교에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북이나 강원 교육감이 밝힌 대체프로그램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죠. 일제고사 거부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건 아니니까요. 일반 시험처럼 학교까지 와서 도저히 시험 못 본다고 하면 인정해 주라는 취지죠.
여기에 학교에 안 나오면 교과부 방침대로 '무단결석'하지 말고, '기타결석'으로 처리하라고 교장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 철학이나 양심상 이유로 체험학습에 참여하는 경우 기타결석 처리 하라"는 거였죠.
무단결석과 기타결석은 불이익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가출이나 범법행위에 적용되는 무단결석은 상급학교 진학에 불이익이 주어지지만, 기타결석은 학교장이 합당하다고 인정한 결석이기 때문에 불이익이 없습니다. 기타결석은 공과금이 없어 학교를 못 오거나, 부모 간병 등 안타까운 사정이 인정됩니다.
'결석은 결석이되, 파렴치한 결석은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결석이다.' 철학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 흔적이 보이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학생 선택권에 대한 입장 없이 일제고사를 치를 뻔 했다는 것도 사실이죠. 그를 지지한 전교조 서울지부가 '일제고사 선택권 보장은 좌고우면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비판 논평을 내기도 했죠.
그럼에도 교과부는 기타결석도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교과부는 어제 오후 황급히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논란 확산을 막으려는 의도였는지, 라디오에 출연한 당국자의 발언을 취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드문 일이죠. 발언까지 취소하며 '무단결석 하라면 무단결석 해'라는 입장입니다. 무단결석과 기타결석의 적법성도 논란을 예고하는 부분이죠.
열탕과 온탕, 테마탕… 이번 일제고사 거부 후폭풍이 어떤 욕탕보다도 뜨거울거란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