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힘을 합쳐 새 회장을 도와 은행을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기를 희망합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국민은행 임원들과 송별회를 갖고 조직 발전을 위한 화합을 당부했다.
강 행장은 13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어윤대 회장 내정자가 공식 취임하면 5년9개월 간의 국민은행장 생활을 마감하고 퇴직하게 된다.
임기가 10월 말까지여서 3개월이 남았지만, 금융당국의 징계를 앞두고 조직과 새 회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중도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강 행장은 작년 12월 회장 내정자로 선임된 직후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30년 금융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회장 내정자직과 행장직 모두 중도 사퇴하게 된데다 최근 정치권의 인사 개입 논란에 휩싸여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각종 논란속 쓸쓸한 퇴장
강 행장은 최근 논란이 되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선진국민연대(선진연대)의 금융계 인사 개입 의혹의 한가운데 있다.
강 행장은 2008년 7월 선진연대 후신인 선진국민정책연구원의 유선기 이사장을 경영자문으로 영입한 데 이어 작년 2월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세미나에 4천만원을 후원했으며 3월에는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총장인 조재목 에이스리서치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금융계과 정치권에서는 참여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던 강 행장이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와 줄을 댈 목적으로 선진연대 인사들을 영입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08년 초대 회장 선임 때 황영기 전 회장에게 밀렸던 강 행장은 작년 9월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투자 손실 문제로 사퇴하자 회장에 재도전해 결국 회장에 내정됐다.
하지만, 정권 실세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다른 후보들의 중도 사퇴에도 불구하고 단독 면접을 강행한 것이 역풍으로 돌아왔다.
금융감독원은 작년 12월 중순 운전기사와 사외이사 등 강 행장 주변에 대한 고강도 조사를 실시했 고 강 행장은 작년말 마침내 회장 내정자 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강 행장이 정부 고위층으로부터 사퇴를 종용받았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 행우회가 설립한 NS한마음(전 KB한마음)의 김종익 전 대표에 대한 국무총리실의 사찰 논란도 강 행장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은행이 김씨에게 지분 정리를 종용했다는 주장과 강 행장이 김 전 대표에게 특혜를 줬다는 주장이 대치하고 있다.
◇고객만족도 개선…당국 징계 주목
금융업계에서는 강 행장이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있지만, 최대 은행의 수장을 6년간 역임한 만큼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행장은 뱅크스트러스트그룹, 도이체방크 한국대표와 서울은행장을 거쳐 2004년 10월 말 국민은행장에 취임한 뒤 2005년에 금융권 최초로 2조 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이후 3년 연속 `2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취임 후 고객만족을 최우선 개선 과제로 내세운 결과 2003~2004년 은행권 6위였던 국가고객만족도(NCSI) 성적은 2005년 2위로 뛰었고 2006년 이후로는 작년까지 4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관 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KCSI) 조사에서도 3년 연속 1위를 지켰으며 소비자 선정 `대한민국 애프터서비스 만족지수(KASSI)' 조사에서도 2년 연속 은행부문 1위에 선정됐다.
2007년 9월에 행장 연임에 성공한 이후 증권사 인수와 지주회사 전환 등 굵직한 현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 이후로도 비은행 부문 실적이 미진한 점은 황 전 회장과 함께 회장 직무 대행인 강 행장에게도 책임이 있다.
1분기 KB금융지주 당기순이익 5천727억원 중 국민은행이 5천203억원으로 91%를 차지했으며 비은행 계열사의 수익 기여도는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
KB투자증권과 KB자산운용이 2.7%와 1.1%를 기록했지만, KB부동산신탁 0.7%, KB데이타시스템 0.1% 등 대부분 계열사는 1%도 안되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은행도 인적 구조 효율화의 지연으로 1인당 생산성이 시중은행 중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강 행장은 금융감독원이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인 국민은행 검사 결과에서 그동안 쌓은 평판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금감원은 올해 1월 종합검사 때 2008년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 인수, 10억달러 규모의 커버드본드 발행, 영화제작 투자 손실 등과 관련해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적절성과 법규 위반 여부를 살펴봤다.
김정태 전 행장과 황 전 회장 등 2001년 통합 국민은행 출범 이후 취임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잇따라 중징계를 받아 은행권에서 퇴출된 데 이어 강 행장에게도 중징계가 내려질지 주목된다.
강 행장은 퇴임 후 자신이 석사 학위를 받았던 미국 터프스대 플레처스쿨에서 연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행장이 퇴진하면 등기임원이면서 선임 부행장인 최기의 경영전략그룹 부행장이 행장 직무대행을 맡아 어윤대 회장의 지시를 받게 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