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앞두고 일찍 퇴근할 계획이었습니다.
상쾌한 마음으로 중부경찰서 기자실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걸려온 캡의 전화.....
"찬종아, 너 퇴근 못하겠다. 지금 동대문 경찰서로 가라!"
"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응, 경찰이 동대문 초등생 성폭행 용의자 CCTV 공개한다고 하는구나."
챙겨놓은 짐을 그대로 들고 동대문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던 카메라 기자 선배에게도 연락을 했죠. 경찰 브리핑 시간이 오후 6시 30분이었는데,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CCTV는 선명했습니다. 거리를 배회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윤곽을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2개였습니다. 12일만에 찾았지만, 늦더라도 이만한 화질의 CCTV를 찾은게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경찰의 설명이 끝나자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오락 가락하는 브리핑
"이 CCTV 어디서 찾으신거에요?"
"네.. 한 대는 방범용 CCTV이고요..한 대는 마트에 설치된 사설 CCTV 입니다."
"근데 사건 현장 근처에 있는 거라는 데 왜 이렇게 늦게 찾은 거에요."
"아 그게 사설 cctv라서 확인이 좀 오래.."
"하나는 방범 cctv 라면서요?"
"아 그게...아... 아닙니다 2개 모두 사설 cctv입니다."
피해 아동 확인도 거치지 않은 공개수배
브리핑을 맡은 동대문 경찰서 강력계장은 계속 사설이었다, 방범이었다 왔다 갔다 거렸습니다.
다른 질문을 해봤습니다.
"이 용의자 얼굴이, 처음에 배포한 몽타주(인상착의)란 다른 데요? 이 CCTV 피해 아동에게 보여주고 확인 절차 거치신 거에요?"
"아...그게 지금 말씀 드리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곤란합니다."
"뭐가 곤란하단 겁니까? 확인 했어요, 안 했어요?"
"아...그게 피해 아동이 심리적으로 어려워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간접적으로 확인 한게 뭐에요?"
"CCTV에 나오는 사람에 대해 구두로 설명해줬단 거죠."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피해 아동이 그동안 용의자 사진을 여러 장 보면서 심리적으로 지쳐있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더라도 범인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피해 아동의 확인도 없이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단 이유만으로 용의자로 공개 수배를 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해 보였습니다.
만약 수배전단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얼굴이 공개된 이 사람이 진범이 아니라면요?
경찰이 아무래도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에 담당자들을 찾으며 여러번 우왕좌왕하던 강력계장이 CCTV의 정체에 대해 최종 확인을 했습니다.
"확인을 해보니까요. 방범용이 맞네요 하나는.."
"아까는 모두 사설 cctv라 확인이 오래 걸렸다면서요.."
"그게 방범이어도 확인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고..우물쭈물"
좀 잘 좀 합시다...경찰
말을 흐리던 강력계장은 결국 명확한 답변 없이 브리핑을 마쳤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관리하는 CCTV에 멀쩡히 들어있는 용의자 모습을 발생 12일만에 찾아낸 경찰.피해 아동의 확인도 거치지 않은 용의자 공개 수배. 조급한 건지, 게으른 건지...무능한 건지, 영악한 건지...여러 가지 모습이 뒤섞여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범인은 빨리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태도를 보면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범인이라도 열심히 잘 잡아야 할 것 아닙니까.
오늘도 매일 경찰서로 출근하는 사건기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좀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