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이 6월 25일이었죠.
월드컵 열기도 뜨거웠지만, 6·25전쟁 60년을 기리는 행사도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해보고 싶은 건 6·25라는 전쟁의 명칭입니다.
이미 학계를 중심으로, 또 사회적으로도 여러 차례 논의가 된 적이 있지만 1950년부터 53년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전쟁의 이름은 여전히 6·25입니다.
6·25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북한 조선인민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습니다.
전쟁 발발일이 전쟁의 이름이 된 것이죠.
전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 세계 1,2차대전
: 워낙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기점이 되어 새롭게 이름 붙여진 전쟁
▣ 태평양 전쟁, 크림 전쟁
: 전쟁이나 치열한 전투가 일어난 '지역'에서 이름 붙여진 전쟁
▣ 백년 전쟁, 30년 전쟁
: 전쟁이 지속된 기간에서 이름 붙여진 전쟁
우리나라에서도 6·25를 한국전쟁이라고 부르자는 학계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6·25의 영문 번역은 'Korean War'입니다. 이를 그대로 다시 한역해서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므로 한국전쟁이라고 부르자는 건데.. '마치 한국(남한)이 일으킨 전쟁 같다', '북한의 기습남침을 잊지 말자는 교훈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인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전쟁을 명명하는 일은 굉장히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입니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를 찾겠다며 시작한 이라크 전쟁.
이라크 사람들에게 미국의 침공이 '이라크 전쟁'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단순한 미군의 침공일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이라크 전쟁이란 용어 대신 이라크 침공이란 용어를 쓰기도 했는데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초토화시키는 형태의 전투는 기존의 전쟁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르는 일본과의 전쟁은 일본에서는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렸습니다.
다시 6·25로 돌아옵시다.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에 의해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건 국제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인정되는 사실일까요? 당시 해방공간에서 38선 이남, 이북의 상황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6월 25일 전면전이 시작되기 전에도 6월 내내 38선 근처에서는 국지적인 교전이 잇따랐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이 결정됐고, 김일성 주석이 꿈꾸던 한반도 무력통일(북에서는 조국해방이라고 부르죠)만큼이나 이승만 대통령도 북진통일의 필요성을 수차례 미국에 역설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자신들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체적 진실은 정확히 말하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6·25라는 전쟁의 이름은 전쟁 이후 남한에서 반공사상의 핵심적인 근거가 돼 왔습니다.
전쟁을 잊지 말자! 자유를 지켜낸 호국영령의 희생을 되새기자!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전쟁이라는 건 군인보다도 몇십, 몇백 배 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것입니다.
오늘(28일)은 한국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된지 사흘만에 서울의 한강다리였던 인도교가 폭파된 지 60년 되는 날입니다.
6월 28일 새벽 2시 반이었지만 당시 인도교 위는 전쟁의 포화를 피해 남쪽으로 피란길에 나선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인민군의 남침을 지연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우리 육군 공병대에 의해 인도교는 폭파됐습니다.
천여 명의 민간인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호전적인 목소리를 단호히 배격하자는 교훈으로 승화돼야 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를 객관적으로, 명백히 규정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당사자에게 보복을 다짐하자는 게 교훈이라면 그것은 전쟁의 악순환을 부를 뿐입니다.
6·25를 이야기하다 보면 여전히 북한 정권은 때려잡아야 하는 적대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진짜 나쁜 놈이 누구인지는 역사가 가려낼 문제입니다.
전쟁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을 걷어내고, 평화와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 내전으로 시작돼 국제적인 전쟁으로 삽시간에 비화돼 3년 넘게 계속된 전쟁이니까 한국전쟁이나 한반도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6·25라는 명칭보다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요?
한 가지 더.
6월 25일이라는 날짜보다는 (역시 외세가 개입한 종결이었지만) 총부리를 거두기로 합의한 7월 27일이 훨씬 더 기억할만한, 중요한 날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