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온 나라가 들썩들썩합니다. 당장 내일 밤이면 운명의 16강전이 펼쳐지니까요.저 역시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것들이란 게 있는 법이지요.
네. 바로 오늘. 60주년을 맞는 6.25입니다. 방송까지 되진 못했지만….
오늘 꼭 한번 생각해보고 싶은 '특별한' 참전병들의 이야기가 있어 몇자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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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소년병에 대해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살에서 17살, 병역의 의무가 없는 어린 나이에 참전한 정규군을 부르는 말입니다.
제 동생이 지금 만 17살, 고 2인데요. 동생 또래 아이들이 총을 들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다니는 모습, 떠올리다보니 이내 마음이 안 좋아집니다.
소년병이 가장 많이 살아계신다는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이제는 백발이 된 할아버지 소년병, 73살의 윤한수 할아버지를 만났지요.
윤 할아버지는 북한군이 고향 대구까지 밀려내려왔던 1950년 8월의 어느날, 열 다섯살의 어린 나이로 입대했습니다. 중학교 4학년 때였다는데, 학교에 온 장교가 입대해야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답니다.
어려운 시기, 제군들이 군에 들어가야한다고. 너희들이 나라를 위해야한다고 말입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입대한 할아버지는 자기보다 키가 몇 뼘 더 큰 형들과 똑같이 훈련을 받고, 일주일 만에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겨우, 서툴게, 총 다루는 법만 배웠을 뿐…. 여전히 어린 아이 티를 못 벗었는데도 말이지요.
윤 할아버지처럼 17세 이하의 어린 나이로 참전한 소년병은 만 4천여명, 이 가운데 4천 7백여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창 배울 시기를 전쟁터에서 보내고 보니 어려운 형편까지 대물림해야하는 형편이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성인 참전자와 같은 월 9만 원의 '명예'수당 뿐.
병역 의무가 없던 이들이 전쟁터로 내몰린 데 대한 변변한 보상도, 사과도 없습니다.
지난 해 겨우 소년병의 참전 사실을 정부가 인정했다고는 하는데,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전국 300여곳 현충 시설 어디에도 소년병 관련 시설이나 그 흔한 위령비 하나 없거든요.
명예를 가지고 살아가려 해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현실. 할아버지들 가운데선 눈시울을 붉히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한 어르신은 그러시더라고요.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서럽다고.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18세 이상의 학도병들은 비정규 군이었던 터라 6개월에서 1년 정도만 복무하고 바로 학교로 돌아갔지만, 어린 소년병들은 정규군이었던 탓에 4년, 5년의 세월을 군대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로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이제 80을 바라보는 소년병들이 대부분입니다.
외면당했던 그들의 설움을 보상해 줄 시한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빚을 진 세대인 저 역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