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한국군 총참모장 이종찬(1916~1983) 중장이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1892~1992) 대장의 부임 1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앨범이 공개됐다.
평생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 '참군인'으로 추앙받는 이종찬 장군과 한국군의 정예화를 주도해 '한국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밴플리트 장군 사이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군사유물로 평가된다.
24일 아마추어 역사학자 강해원(54)씨가 공개한 앨범은 가로 31㎝, 세로 31㎝, 폭 3.5㎝로 겉표지에 태극기와 대장의 표식인 별 네 개, 연도를 뜻하는 1952가 수놓아져 있다.
부대시찰, 작전지휘 등 밴플리트 장군의 활약상과 육군대학의 전신인 지휘참모대학, 육군사관학교 개교식 장면 등 모두 44장의 사진이 수록됐다.
첫 장에 'TO JAMES A VAN FLEET ON YOUR FIRST ANNIVERSARY(1주년 맞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께)'라고 적혀 있어 이 장군이 밴플리트 장군의 부임 1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앨범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장에는 선명한 붓글씨로 '경애하는 밴·푸리-트 장군. 불멸한 공훈 인류 청사에 길히 빛나리. 단기 4285년 4월14일 대한민국. 그대의 영원한 전우 육군총참모장 육군중장 이종찬'이라고 적혀 있어 두 사람 간의 우정을 짐작케 한다.
강해원씨는 "밴플리트 장군 서거 후 유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골동품 시장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며 "수록된 사진 중 이승만 대통령이 지휘참모대학 개교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사진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앨범을 검토한 육군박물관 관계자는 "당시 군 최고위층 사이에서 앨범 제작이 유행했다"며 "제작 형식 등으로 볼 때 이종찬 장군이 밴플리트 장군에게 선물한 진품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수록된 사진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공개된 사진으로 보이며, 이 대통령의 지휘참모대학 개교식 연설 사진 등도 미공개 사진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관계자는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늘리고 육사와 육군대학 등 군 교육기관 설립을 주도하는 등 한국군의 양적·질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며 "그의 유품은 한국 군사(軍史)에 있어 큰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이종찬 장군은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때 자신의 재선을 위해 군병력을 동원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한 일로 총참모장에서 해임됐으나 평생 '참군인'으로 불렸다.
밴플리트 장군은 6.25 전쟁에 미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외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자 적진에서 무리한 수색작전을 펴려는 공군 사령관에게 수색 중단을 명령한 일화로 유명하다.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 짐 밴플리트 중위가 전사한 것은 1952년 4월4일로 이종찬 장군이 앨범을 선물하기 열흘 전이었다.
강해원씨는 "이종찬 장군이 선물한 앨범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부대 지휘에 여념이 없는 밴플리트 장군을 위로하려는 마음도 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