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돌아왔습니다."는 거의 죽을 뻔 했을 때 하는 얘기죠.
오세훈 시장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솔직히,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아주 여유있게 이기고 돌아와 힘이 팍 들어간 어깨와 한층 뻗뻗해진 고개를 보여 줄 줄만 알았죠.
스스로 '패배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할 만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유있는 선두였으니까요.
하지만 '보약' 같은 경험이라고 말 할 만큼, 지난밤 오세훈 시장은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경험을 했습니다.
자정 무렵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사의 카메라기자들은 '패배자 오세훈'을 담겠다며 선거 캠프를 찾은 오세훈 시장을 향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습니다.
캠프로 나오기 직전, 참모들은 오 시장(당시 후보)을 언제 모시고 와야 하는지를 놓고도 심각하게 고심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장하기도 그렇고, 더 두고보자니 상황이 바뀔 것 같지도 않은데다 선거운동원들까지 귀가하고 나면 분위기마저 휑~해진 캠프에서 진정한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을테니 말이죠.
결국 일단 나오시라 해서 한 말이 '패색이 짙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정도였다네요. 그 순간이 오세훈 시장에게는 지옥이었을 겁니다.
뒤집기 끝에 오 시장 캠프에서는 새벽 5시 반쯤 승리를 확신했다고 하는데요, 잠깐이나마 은행에 몸 담았던(?) 조윤선 대변인이 연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였다고 하네요.(은행에서 법무본부장을 맡았던 변호사 출신인데... -.-;;)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의 첫 재선 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은 어찌보면 현 정권을 심판한 이번 선거에서 유일하게 '실력'으로 살아남은 몇 안되는 후보일겁니다.
25곳의 자치구 가운데 21곳의 구청장을 민주당이 차지했는데도, 시장은 '오세훈 개인'을 보고 뽑았다는 말이 되니까요. 그래서 민선 5기에 접어든 오세훈 서울시장에 거는 기대와 걱정이 더 큰데요, 4기와는 달리 '여소야대'의 자치구와 시의회,진보성향의 교육감과 일을 함께 해야하기 때문입니다.(시의회도 106석 가운데 79석을 민주당이 차지)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시청 공무원들만 더 업무량이 늘어나는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4기 때보다 더 철저히, 더 확실히 자료와 근거를 모아야 할 테니까요.(사실 팀장급 이하 시 공무원들은 밤낮 '창의시정'을 외치며, 본인들을 못 살게 굴어온 시장이 행여나 바뀌는 건 아닐까 좋아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ㅋ)
증권가에는 이런 말도 들리더군요. 일이 힘들어 죽겠다는 직원이 많은, 그런 회사의 주식을 사라는... 서울시 공무원들을 더 힘들게 할 오세훈 시장. 저는 오세훈 시장 본인도 더 힘들어졌으면 좋겠네요.
본인 얘기처럼 보다 풍부해진 의견들을 바탕으로 한층 숙성된 시정을 보여주기를 출입기자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