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46일이 지났습니다. 전 국민의 슬픔속에 영결식이 치러졌고 이제 남은 것은 확실하고도 분명한 조사결과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뒤로 워싱턴 특파원들은 미국 당국자들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단순히 남북간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는 물론 국제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보니, 한국의 맹방인 미국의 태도는 그 날 그 날의 주요 뉴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우기 중국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면서 미국의 협조는 한국 정부에 무엇보다 시급하고도 중대한 당면과제였죠.
사실 특파원들이 만날 수 있는 미국 당국자라야 한정돼 있습니다. 서울에서는(조금 과장한다면) 내노라 하는 사람들을 지나가는 옆집 아저씨처럼 만날 기회가 많았지만 이 곳은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DC다 보니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국무부의 크롤리 대변인, 위 사진속의 스타인버그 부장관,캠벨 차관보, 보즈워스 대북대표 정도가 되겠네요. 그 것도 사전에 이 사람들의 일정을 파악하고 있다가 현장에 가서 공식 연설을 듣는 수준, 혹 기회가 된다면 연설 혹은 브리핑 후에 잠깐 물어보는 게 전부입니다.
문제는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가 아직 안나온 상황이어서 물어보는 스타일이 결국은 가정을 전제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만약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난다면..."
"만약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유엔 안보리로 회부한다면..."
"만약 북한이 부인한다면..."
... 현장을 벗어나 조금 머리를 가다듬다 보면 온통 만약, 만약, 만약 이라는 말만 맴돌곤 하더군요.
그런데 미국 당국자라는 사람들 여간 노회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답만 반복하는 것을 보면 로보트 같기도 하고,그 긴 시간동안 똑같은 질문을 받아도 짜증내지 않는 것을 보면 도를 깨우친 사람들 같기도 하고 말이죠.
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현재 한국 정부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조사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조사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질문을 멈출 수는 없는 일, 어제 있었던 브루킹스 연구소 주최 토론회에는 스타인버그 부장관이 참석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주제였는데요,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준비를 해온 듯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상태다. 조사결과를 보자. 철저한 조사가 진행중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황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거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기간 중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의 추이를 미국정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기를 바란다."
강연에 이은 일문일답시간에는 예의 'if' 질문이 또 나왔습니다. 만약에 북한이 공격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미국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그러자 스타인버그 부장관이 이런 말을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습니다.
"Well, I'm going to resist all of those 'ifs' in your question"
옮기자면 "여러분들의 질문속에 담긴 '만약에'라는 말과 싸워야 하겠네요." 그리고는 스타인버그 부장관은 "아직 결론이 난 게 없습니다.조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고도 객관적으로,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말이죠. 호주와 노르웨이등 다른 나라들도 조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를 전제로 한 질문에 어떤 때는 이르다 싶게 기자에게 속내를 드러내곤 하는 우리 당국자들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는 모습입니다만, 어쩌면 이들 역시 자국 기자들에게는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끔 단독기사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결국은 이런 당국자들의 말이 근거가 되곤 하더군요.
조금만 참으면 만약에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미국 정부의 대응을 물어볼 수 있겠네요. 이들이 말하는대로 철저하고도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분명한 조사결과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은 하되 명확한 근거는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추정도 하던데요, 그 부분과 관련해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우리는 왜 천안함이 침몰했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