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보스 정치'가 사라진 요즘 개인 일정이나 한 마디 발언으로 언론을 들썩이게 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정치도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게 됐다는 반증이기는 하지만 영향력 있는 지도자급 인사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수장들이 갖고 있던 '공천'과 '돈'이라는 막강한 권력이 사라진 것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런 '평준화'(?)된 정치판에 아직도 자기 지역구에 다녀오는 것만으로 뉴스가 되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그녀 뒤에는 여전히 여당의 대권후보 1순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천안함 사태로 다소 부담스러웠을 법한 언론의 관심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지만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시 옛일이 됐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물론 야당에서도 '선거의 여인'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일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을 찾았다. 정몽준 대표는 물론 한 때(?)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던 김무성 신임 원내대표도 지방선거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였던 만큼 언론의 관심은 컸다. 비록 자신의 지역구라고는 하나 군수 후보의 사무소 개소식에도 참석하기로 한 때문이다.
하지만 측근들은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지역구의 경로당을 찾아 위문행사를 갖는 게 통례였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사무소 개소식 참석은 부수적인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도 대구까지 따라온 기자들에게 이런 입장을 분명히했다. "선거는 당 지도부 위주로 치르는 게 맞다"는 원칙적인 대답이었다. 선별적으로라도 지원유세에 나설 수 있냐는 질문에도 그럴 계획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마디로 이번 지방선거 유세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측근들은 지난 대선 때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추진을 약속하고 표를 부탁했는데 수정안이 제출된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냐고 말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당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다면 앞으로라도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도 아니지 않냐는 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종시 문제에만 묶여 있으면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선이 2년여 남은 시점에서 언제까지나 뒤에 물러나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으로 복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고민이 깔려 있다. 한마디로 출구전략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천안함 사태와 남북문제, G20개최 등 현안이 줄줄이 이어질 경우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 전면에 나서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게 여의도 주변의 분석이다. 정치인에게 잊혀지는 것 만큼 무서운 적은 없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지지'이며 이를 잉태하는 것은 원칙과 신뢰라는 주장이다. 당장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원칙과 신뢰를 지킬 때 국민들은 '표'라는 믿음의 증표로 화답해준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대세론을 꺾었던 이른바 '바람'이라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말한다.
올해만 해도 6.2 지방선거와 7.28 재보선 그 사이, 혹은 그 이후 있을 지 모를 전당대회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산적해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설 지, 아니면 끝까지 때를 기다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선택에 따라 정치판도 함께 요동칠 것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