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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 당하는 대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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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년째.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는 점점 어렵다.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구하는 대로 해 봤다. 통장 잔고는 줄기만 한다. 큰 애는 또 아프다. 병원에 입원했다. 은행 대출이 막힌 건 오래 전이다. 한계를 느낀다.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스팸 문자 메시지에 눈길이 머문다.

"조회 기록이 남지 않는 대출"

"신청 즉시 대출"

이런 광고 문구에 현혹돼 스스로 전화를 걸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곳에서 돈을 빌리면 금리가 아주 높아 나중에 시달리게 될 테다. 머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손가락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연 7%로 3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단다. 뜻밖이다.

"나는 은행 대출도 안 되는데 어떻게 금리가 은행보다 쌉니까?"

"신용이 안 좋아도 저희들이 신용등급을 올려 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작인데요, 다만 장기간 사용 중인 통장이 필요합니다. 기존 거래내역에다 새로운 거래내역을 쌓아드립니다. 그러면 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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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뭔가 속임수가 있다. 이건 아니다.

잠깐, 근데 쓰지도 않은 통장을 보낸다고 내가 손해볼 건 없지 않은가.

5천 원 정도만 잔액이 있으면 된다는데. 밑져야 본전인다.

대출업체가 보낸 퀵서비스에 봉투를 건넸다. 잔액이 5천 몇 백원인 통장, 현금카드, 그리고 비밀번호. 잠시 뒤 대출업체로부터 전화가 온다.

"통장은 잘 받았고, 내일 입금해드리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대출업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은행에 확인 전화를 해 봤다. 내 통장이 전화 금융사기에 이용돼 지급 정지가 됐단다. 그 은행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은행에서 온라인 거래가 안 된다. ATM에서의 거래도 안 된다. 당분간은 창구에서 직원과의 대면 거래만 가능하단다.

답답해서 경찰에 신고도 하고, 금융감독원에도 알아봤다. 예전에는 보통 대출에 필요하니 신규 통장과 현금카드를 가져오라고 했단다. 아니면 그냥 신규 통장을 하나 만들어 오면 10만 원 정도에 사 줬다고 한다. 대출 사기업체들은 그렇게 모은 신규 통장을 전화 금융사기단에 되팔아 돈을 챙긴단다.

하도 전화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니 새로운 규제가 생겼다고 한다. 일단 ATM에서의 출금은 하루 600만 원으로 제한돼 있다. 또 지난해 6월부터는 신규 계좌에 대해 사기혐의 모니터링이 강화됐다.

통상 전화 금융사기에 이용되는 계좌에는 특징이 있단다.

일단 1만 원 이내의 소액으로 계좌가 개설된다. 이후 며칠 이내에 2~3만 원 정도의 입출금 기록이 생긴다. 신규 통장을 넘겨받은 전화 금융사기단이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다. 실제 입출금이 가능한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그리고는 사기에 이용한다. 이런 통장에 대해서는 일시에 거액이 입금될 경우 전화 금융사기를 의심해 은행들이 입출금 제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단다.

또 지난 3월부터는 예금계좌 개설 정보 조회 시스템이 가동됐다. A라는 사람이 한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다른 은행에서도 그 정보를 볼 수 있다. 단기간에 여러 개의 계좌를 개설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의심받게 된다. 계좌 개설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개설이 거부되기도 한다.

이러니 최근 대출 사기업체들은 장기간 사용 중인 통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피해만 금융감독원에 하루 서너건씩 신고되고 있다. 신고되지 않는 피해는 더욱 많을 터. 장기간 거래내역이 쌓여 있으면 신용등급을 올리기 쉽다고 유혹하면서. 당국의 감시도 피하고 궁박한 처지에 몰린 사람을 쉽게 속일 수 있는 수법이다.

내 통장이 사기에 이용됐다는 건 내가 민사상의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는 걸 뜻한다. 내 통장으로 돈을 보낸 전화 금융사기 피해자가 나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그 돈을 챙긴 게 아니며, 나도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한다. 지금도 경찰 조사는 계속되고 있고 나는 수차례 경찰에 가서 소명해야 했다.

그런데 통장을 빌려주거나, 사고 파는 행위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전자금융거래법에 의해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은 피해자임을 잘 소명하면 그렇게까지 심한 처벌은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내 명의의 모든 계좌가 막혀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과금 자동이체까지 안 되니 여기저기서 연체가 쌓인다. 창구 대면 거래만 가능하니 매번 은행에 가야 한다. 은행 직원들이 굉장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인 현실에서는 나도 범죄자가 돼 있다. 내 통장을 통해 범죄가 발생했기 때문에 나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항상 같은 말이다. 의심스러운 대출업체에 접근하지 말아라. 우선 제도권 금융회사에 가서 상담을 받아라. 정 안 되면 이지론이니 미소금융이니 저신용자 전담 대출기관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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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꾸도 항상 같다.

제도권 가면 대출 되냐? 안 되니까 대출업체 찾는 거 아니냐? 서민 대출 정말 힘들다. 누구한테 피해 준 적도 없고, 나름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할까. 나같은 사람 속여서 제 뱃 속 채우는 인간들 정말 비겁하다. 이런 한탄 속에 또 소득없는 하루가 지나갔다. 통장 잔고는 0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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