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기본적으로 속이는 행위입니다. 사각의 프레임 속의 모습을 현실인양 믿도록 꾸미는 거죠. 특수효과 역시 고도의 눈속임을 위한 장치일 뿐이죠.
그런데 상업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쉽게 속아넘어가지 않습니다. 특수효과가 어디에 쓰였는지 뻔히 알면서 영화를 비웃습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몰입되지도 않습니다.
그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돌파구로 최근 페이크 다큐 형식의 영화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해 인기를 끈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블레어 윗치' 이후 페이크 다큐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영화 서두에 보면 주인공이 구입한 캠코더가 등장하는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캠코더에 찍힌 화면으로만 이뤄집니다. 이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귀신'같은 존재가 슬쩍 슬쩍 문을 건드리고 주인공의 여자친구에 빙의하기도 하며 계속 놀라게 하는 내용인데요. 마치 주인공이 실제로 찍은 것을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해 관객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했습니다.
[전인아/서울 화곡동 : 지금도 영화보고 나왔는데 떨려요.]
[서현석/연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 화질이 낮고 또 색상이 떨어지거나 연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일상에 가깝다라고 여기게 되는….]
페이크 다큐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제작비입니다. 오히려 더 어눌하게 일상 속에서 다큐처럼 찍으면 됩니다. 그럴싸한 세트나 특수효과도 필요 없습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제작비는 우리 돈으로 1천 8백만 원인데, 전 세계에서 1천 2백억 원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수익률로 따지면 영화 역사상 최고라고 합니다. 저예산에 적합한 페이크 다큐의 힘이죠.
성을 통해 장애인에게 봉사한 여대생의 실화를 그린 조경덕 감독의 독립 영화, '섹스 볼란티어'도 페이크 다큐입니다. 시사고발프로그램 형식을 빌렸습니다. 지난해 상파울루 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아 브라질에서 개봉을 준비중입니다. 당시 영화제 시사회 직후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은 진짜 다큐멘터리로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조경덕 감독/ '섹스 볼란티어' 감독 :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영화를 만듦으로써 아무래도 적은 예산으로 진정성있는 사실적인 영화로써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도 지난 2004년 CCTV 화면만으로 구성된 페이크 다큐로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현대사회의 일상 속에서 주인공이 점점 파괴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는데요. 지하철 CCTV, 은행 CCTV, 화장실 CCTV 등으로만 화면이 구성돼 굉장히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페이크 다큐 영화들은 갈수록 현란해지고 교묘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 같습니다. 카메라 워킹은 다큐처럼 찍어도 그 안의 피사체가 어색하다면 그것이 연기이고 설정이란 사실을 금세 알아차려 몰입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인지 위에서 언급한 영화중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제가 영어를 못해서 몰입이 잘 됐는데, '섹스 볼란티어'는 배우들이 쓰는 한국말 속에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들어 몰입이 잘 안되더군요.
어차피 돈과 시간을 투자해 즐겁자고 보는 것이 영화인 이상, '어디 얼마나 리얼한지 한번 보자'는 자세보다는 '그래 한번 속아주지 뭐' 같은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는 것이 낫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