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민주당 이광재 의원에게서 '강원도지사 출마선언문'이란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소외된 강원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나섰다며, 행복한 강원도를 위한 7가지 정책 방향과 함께 다음 주 중으로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무리 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였다.
정치부 경험이 없는 내가 이 의원실 보도자료를 받게 된 것은, 이 의원이 지난해 박연차 사건에 연루되어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 이 의원을 만나 명함을 건넨 적이 있을 뿐 나는 이광재 의원과 친분이 없다. 당시 법원에는 나 말고도 많은 법조기자들이 있었기에 아마도 이 의원은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당시 이 의원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 의원에게 적용된 공소사실은 모두 7가지였는데, 재판부는 이 중 4건에 대해(박연차 전 회장에게 미화 10만 달러, 정대근 전 회장에게 미화 2만 달러) 유죄를 인정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의원은 항소했고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의원은 결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2억 283만원을 구형 받았는데, 공판을 마치고 나오면서 "국회의원직을 그만두고 봉하마을로 내려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정치인은 무죄가 나도 유죄 취급을 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해 자원봉사를 하러 가겠다는 설명과 함께. 지친 표정에서 깊은 회한이 느껴졌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자들을 뒤로하고 이 의원을 따라가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는 진심을 담아 위로의 말을 전했다.
결심공판 다음 날, 이 의원은 의원직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며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신을 이을 인재가 사라진다며 반대했지만, 이 의원은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신문과 방송에는 이 의원의 사퇴 소식이 잇따랐다. 며칠 후 이 의원 이름으로 봉하마을의 추수 소식을 전하는 메일이 왔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꽤나 인상 깊었다.
하지만 이후 유죄를 선고 받은 이 의원은, 선고 며칠 만에 묘한 발언을 했다. 정치활동 재개 의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내 마음이 자꾸 변한다"고 답한 것이다. 그러면서10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보낸 탄원서를 보며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째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7개월 후, 이 의원은 강원도지사에 출마했다.
선출직인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버리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거나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이 의원이 의원직을 내던진 시점이 왜 하필 결심공판 직후였을까 싶다. 정치탄압이 억울해 본보기로 몸을 던졌던 것이라면 차라리 꿋꿋하게 견디며 싸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고작7개월 만에 이렇게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올 것이었다면.. 지킬 수 있는 말만 하고, 내뱉은 말을 끝까지 지켜내는 신중함과 신의를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까? 진심으로 건넸던 위로의 말이 떠올라 한동안 머쓱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