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정서를 가진 한국인을 우리 일본인들이 왜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지난 2004년 겨울연가와 대장금으로 이어진 한류열풍이 아시아를 휩쓸 당시 한 일본인의 소회다.
겨울연가 주인공 배용준은 일본에서는 '욘사마(樣)'라는 극존칭으로 불리며 국빈대접을 받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임기 중 욘사마를 빗대어 "준사마다가 되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배용준은 일본에서는 유명인사인 것.
배용준이 지난 2004년 11월 일본에 첫 방문 시 나리타 공항은 개항 이후 최대 인파인 5,000명이 모였다.
영국출신 세계적인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2003년 6월 나리타 공항 입국 당시 1,200명이 모인 사실과 영화 해리포터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일본 방문 때 700명 모인 것과 비교하면 배용준의 일본 내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단적으로 배용준을 보기 위해 모인 일본인 수가 지난 1987년 마이클 잭슨이 첫 일본 방문 당시를 웃돌 정도면 말 다했다.
배용준의 첫 일본방문 당시 취재규모도 사상 최대로 기억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를 비롯해 TBS, 후지TV, 일본 유력 일간지 요미우리, 닛칸 스포츠, 도쿄 스포츠 등 일본 내 주요 방송국과 언론사 취재원들이 모두 나리타 공항에 집결했다. 또 후지TV와 TBS는 헬기까지 동원해 배용준 입국 현장과 이동경로를 1시간 넘게 생중계하는 열성을 보였다.
배용준-최지우 사랑이야기, 일본 아줌마만 열광하는 것 아니다.
"겨울연가를 최근에야 다 봤다. 그전까지는 한국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의 상투적인 사랑이야기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겨울연가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사랑도 이렇게 고귀하고 순수하게 그려질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됐다."
이는 일본 젊은 남성들의 반응이다. 일본인들은 한국드라마뿐만이 아닌 자국드라마도 여전히 미남미녀의 사랑이야기나 신데렐라 콤플렉스 이야기가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본드라마의 경우, 연기에 기본도 갖추지 못한 '아이돌그룹'이 다수 나오는 10대~20대 겨냥 학원물이 많아 중장년층 세대는 대중문화 외톨이로 소외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04년 일본에 겨울연가가 방영했고, 일본 중장년세대 남녀 모두 원 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겨울연가가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일본의 사회 물정 다 꿰뚫어 보는 노련하고 냉소적이며 감정이 메마른 세대들의 가슴을 뒤흔들었을까.
일본인들은 겨울연가에 대하여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첫 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배용준과 최지우의 혼이 담긴 열연, 특히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재회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은 마음에 잠재워 둔 전기불꽃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캐릭터의 힘도 컸다. 일본 중장년 여성들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배용준의 '선한 미소'에 엔도르핀이 샘솟았다.
한 여성은 일본 배용준 팬 게시판에 "겨울연가를 본 후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그녀는 "얼마 전 사별한 남편 생각에 자살까지 결심했지만, 배용준을 본 후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그것이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남편을 위하는 길"이라고 고백했다.
이에 일본 여성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리면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드라마는 때묻은 마음과 정신을 씻어주는 묘약과 같다.", "어린 시절 순수한 기억을 되찾아준다.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우울증 증세도 많이 호전 됐다."라는 글들이 이어졌다.
일본 남성들은 단발머리 최지우의 뜨거운 눈물에 반했다. "반짝이는 눈망울이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라는 일본 남성들은 영원히 지켜주고 싶은 여성상이 지고지순한 최지우 캐릭터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인들이 한국드라마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연기의 깊이에 있다.
일본인들은 자국드라마는 상품성 때문에 연기파 배우들보다 아이돌그룹이 더 주목받고 있다고 전한다. 그 때문에 드라마에 깊이가 없고 신인배우들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분명히 다양한 소재와 창의적인 대사는 신선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캐릭터 배우의 섬세한 연기력 힘에 있다는 게 대다수 일본인의 시각이다.
반면 한국드라마에 대해서는 상투적이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계속 빨려드는 이유는 연기파 배우들의 환상적인 열연에 있다고 전한다.
결국, 지난 2004년 한류의 시발점이 된 겨울연가를 통해서 본 한국드라마의 장점은 배우들의 감정선이 살아있는 풍부한 표정연기라는 결론이다.
최근 아이리스가 일본 공중파 TBS에서 저녁 9시 황금 시간대에 편성됐다. 시청률은 10%대로 준수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국내 네티즌들은 걱정하고 있다. 아이리스의 2%아쉬운 작품성 때문이다. 미국드라마를 참고한 인상을 주는 새롭지 않은 이야기 구성, 그리고 배우의 연기력이 근심거리다.
물론 아이리스는 막대한 투자금을 동원해 스케일이 크고 볼거리도 많다.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소재 한국드라마 스타일에서 벗어났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또 한 번의 진화를 위해 모험을 건 한국드라마 '실험작품 1호'라는 게 한국 네티즌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일본에 한류열풍이 본격적으로 분 시기는 채 6년도 지나지 않았다 국내 네티즌들은 실험작을 일본 공중파 황금시간대 편성하는 것에 의문부호를 던진다. 그러면서 겨울연가나 대장금처럼 빈틈없는 작품을 수출하는 게 정체기인 한류열풍에 탄력을 줄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의 선을 살리는 연기파 배우들의 혼이 실린 겨울연가,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대장금 같은 문화적 충격을 줄수있는 작품들 위주로 승부를 거는 게 더 좋아 보인다는 목소리다.
결국, 미국드라마와 같은 세계적인 유행 트랜트를 쫓는 것보다 한국드라마만의 장점을 살려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는 게 한류를 지탱하는 비결이 될 수 있다. 이미 일본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지난 2004년 4월3일부터 9월4일까지 전 일본에 방송한 겨울연가가 증명해냈다.
이충민 SBS U포터
(※ 이 기사는 '데일리안'에도 송고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