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에 대한 학교 측 대응은 단호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강군을 설득하거나, 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불러다가 혼을 내거나, 징계를 하는 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강군이 소송을 내자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5년 간의 소송 끝에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를 살펴보죠.(설명이 다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만, 양해하시고. ^^)
이 사건은 헌법상 '모든 국민이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종교의 자유>와, '학교 설립자와 법인이 독자적인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 운영할 자유를 가진다'는 <사학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정부는 입시 과열을 해소해 중학교 교육이 입시과목 위주로 편성되는 것을 막고, 고등학교 사이의 격차를 해소해 질적으로 교육을 균등하게 하기 위해서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학교군별로 추첨해 학교에 강제로 배정하는 '고교 평준화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절반 가량이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그 정도로 우리나라 교육체계 내에서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죠. 때문에 국, 공립학교를 지금보다 더 많이 만들지 않는 이상, 사립학교에게 학생 선발권을 전면적으로 부여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교육의 확대'와 '기회균등'이라는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범위 내에서는 학생과 학교 모두 교육에 관한 기본권을 제한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통상 대법원은 이렇게 하나의 법률을 둘러싸고 두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두 기본권 사이의 조화를 꾀하는 식으로 판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다50747 판결, 대법원 2009. 1. 15.자 2008그202 결정 등 참조) 그럼 대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대법원은 대광고가 비판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방식으로 종교 교육을 실시할 경우에는, 그 자체로 교육 본연의 목적을 벗어났다고 볼 소지가 높은데다가 그로 인해 학생이 입게 되는 피해는 지속적이고 치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미션스쿨에 진학하게 된 학생이 뺑뺑이로 다른 학교에 배정되는 학생들에 비해 별로 특별한 이익이 없다고도 봤고요.
그래서 비록 대광학원이 종교 교육을 할 자유와 운영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현재 공교육체계에 편입되어 있는 이상,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를 고려한 대책을 마련하는 속에서 종교 교육에 대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결국 대광학원이 시행한 종교 교육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학생의 종교에 관한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본 것 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학교 측 손을 들어줬던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이런 경우를 파기환송 이라고 합니다)
판결 직후, 대광고가 속한 개신교 예장통합 측은 판결에 대한 즉답을 피했습니다. 대신 공식적인 논평이나 추후 대응은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검토하겠다고만 밝혔습니다. 공식 집계를 해 본 것은 아닙니다만, 판결에 대한 반응은 종전대로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상식적이다, 당연하다>는 것과 <이해할 수 없다, 우려된다>는 건데요.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되는데다, 지금껏 계속되어 온 논쟁이기 때문에 제가 여기서 굳이 재차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판결을 마치고 대법원을 나서는 강의석 군을 만났습니다. 지금껏 직접 대면한 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덩치도 크고 인물도 훤칠 하더군요. 기자들의 질문에 강의석 군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 판결에 대한 소회는 어떠신가요?
= 당연한 판결을 얻는 데 5년이라는 긴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의 강제적인 종교의식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고요.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교육방침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더 이상 강제적으로 종교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번 판결 손해 배상 전액을 다시 학교에 돌려줄 생각이고요. 학교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는 앞으로는 더 이상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진정한 종교 교육을 할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 자기만이 옳다는 배타적인 선생님의 권위가 내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제도 때문에 자기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 또는 자기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직접 행동으로 옮겨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는것이 진정으로 자유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 또한 가진것도 하나없도 지식도 하나없는 하나의 고등학생이었지만 제가 지금까지 대법원에 와서 승소할수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행동으로 옮겼던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 됩니다. 여러분도 지금 포기하지 마시고 행동으로 옮기시면은 종교 자유가 됐건 어떠한 자유가 됐건 저 처럼 언젠가 이기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이 되고요. 항상 포기하지 마시고 힘을 가지시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인이 주장하는 바가 정확히 뭐였습니까?
= 저는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강경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도 종교 교육을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자기의 종교의 자유를 누릴수 있는 환경만 갖추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 학교에서 자기의 종교 의식을 하고 싶고 종교 교육을 하고 싶으면 학생들 중에서 하고싶은 사람만, 그 종교 의식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고요. 그것이 어렵다면 지금 이 순간 부터라도 원치 않는 학생들은 찬송가를 부르지 않을수 있는 자유, 그것만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재를 하고, 판결문을 읽고, 통화를 하고 기사를 썼습니다. KBS는 단신으로 처리했고, 파업 중인 MBC는 따로 기사를 쓰지 않았더군요. 통화 도중 강의석 군에게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강 군은 기독교 자체에 대해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관료화 된 교회는 문제있다고 본다고 답하더군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 역시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가끔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해야 할 때면 씁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 비판이 결국 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관료화 되고 조직화 되어버린 한국교회가 알맹이는 사라지고 겉모습만 남아 삐걱대는 모습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잘못된 일에 소극적으로나마 동참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흔히들 성경의 가르침을 <사랑>이라고 요약해 얘기합니다. 예수가 <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학생들에게 강제로라도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미션스쿨들의 방침 역시 하나님 사랑을 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이 가르침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은 반드시 <인격적인 관계>가 전제될 때만 성립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어느 사랑도 인격적인 관계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없습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 하더라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강요 당한다면, 이미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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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 군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받게 될 손해배상금 1500만원을 전액 학교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상을 밝힐 인재들을 양성하겠다며 설립돼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며 사랑과 용서를 <가르쳐왔던> 대광고는 5년 동안 법정 다툼을 벌여 오면서도 결국 강 군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비기독교인 강의석 군이 학교를 용서한다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 <잘못 사는 것을 비판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비판 받지 않도록 스스로가 <잘 살아내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평생 남을 혼내고 나무라며 살아가야 하는 기자로 살아가면서 솔직히 저는 마음이 어려울 때가 참 많습니다.
기자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고 반성하겠습니다. 하지만 기자의 자격으로는 모자라고 어설픈 기독교인을 아프게 비판해야겠습니다.많은 기독교인들이 구한말 선교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그 때의 부흥을 되새깁니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 100년까지 돌아보기 전에, 당장 지금 내 주변 사람들부터 돌아봅시다. 형식에 얽매여 내용을 버리고 마는, 이런 웃지 못할 일들이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