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해 한.중 FTA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이날 지시는 진전을 보지 못하는 양국의 산관학 공동연구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더 높은 단계의 지도력을 발휘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중국이 지난 1월 대만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협상을 시작해 오는 6월 마무리할 예정이어서 중국 시장에서 대만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기업이 불리해지는 상황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산관학 공동연구 '정체'…논의 탄력받을 듯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한·중 FTA는 2007년 3월 산관학 공동연구를 시작한 이후 2008년 6월까지 5차 회의를 했지만 아직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양국이 연구 보고서 채택을 놓고 민감한 분야에서 문구 하나하나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FTA가 워낙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정식 FTA 협정문 채택이 아닌 연구 보고서 채택인데도 기 싸움이 팽팽하다.
우리는 농산물 분야에서,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의 경우 한·중 FTA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종전 한·미, 한·EU FTA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단 중국과 우리는 농산물 분야에서 생산품목이 비슷하다.
중국으로부터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면 우리 농업 생산액이 10~14% 감소하고 중국으로부터의 농산물 수입은 103억~108억 달러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수산업에 대한 영향도 연근해 어업, 내수면 어업, 수산가공업 등 대부분 국내 수산 부문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 때문에 본 협정에 앞서 국내 농산물을 보호할 수 있는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양국이 기 싸움으로 시간을 소진하다 보니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지지부진한 한·미 FTA 산관학 공동연구를 끝내고 직접 협상에 돌입할 방법을 찾도록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최근 미국 방문 때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한·중 FTA 문제를 꺼낸 데 이어 지식경제부 장관도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FTA 추진 여건을 검토하겠다고 보고 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지시는 한·중 FTA의 필요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중 FTA에 대한 희망의 목소리는 이미 중국에서도 나왔다.
중국의 차기 국가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지난해 12월 한국 방문에 앞서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 정신'을 언급하며 "우선 의견이 일치한 것부터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에 착수할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양국의 지도자가 직접 한·중 FTA 추진의 필요성을 강하게 언급한 만큼 공동연구 논의는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지만수 중국경제팀장은 "바로 협상을 시작하자고 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며 "최종 회의가 빨리 열릴 것이고 협상을 시작할 근거자료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대만 ECFA 추진…중국서 한국 경쟁력 '빨간불'
지난해 한·중 간 무역규모는 1천410억 달러를 기록했고, 중국에 대한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3.8%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중국시장에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대체로 증가하고는 있지만 경쟁국 업체들의 시장 잠식으로 한국 디지털 TV의 점유율이 2008년 12.2%에서 지난해는 7.7%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식경제부는 이를 감안해 "중국의 내수지향 기조에 대응해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다른 선진국 및 대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갖도록 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중국은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등과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이고, 대만과는 올해 6월께 경제협력협정(ECFA)을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대만이 일정대로 ECFA를 체결하면 우리의 중국 수출시장에는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이고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8~9%로 비슷하다. 우리가 중국에 수출하는 상위 20개 품목 중 총 14개 품목이 겹쳐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대만이 ECFA 협정을 통해 우리가 대만과 경쟁하는 품목들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거나 인하하면 중국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ECFA 협정이 중국.아세안 FTA처럼 완전한 협정이 아니고 일부 기본적인 사항만 규정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대만과 경쟁해야 하는 품목이 포함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한·중 FTA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대만 등을 생각할 때 더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