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인 오늘도 (한국은 토요일 새벽이겠네요) 미국 정치권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최고령 대법관이 공개적으로 은퇴의사를 밝혔습니다. 공화당의 뉴올리언스 집회에서는 페일린 전 부통령후보가 입에 칼을 단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안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스투팍 민주당 하원의원이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 가운데 스투팍 의원의 사례가 상대적으로 더 큰 관심을 끄는 것 같습니다.
도요타 청문회때 귀에 쏙 들어오는 질문으로 저희 뉴스에도 등장했던 스투팍 의원입니다. 미시간주 출신으로 18년동안 하원의원을 해온 그가, 그 것도 민주당 소속으로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법안이 민주당이 반대해온 낙태에 정부지원금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던 그가,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양보를 얻어내면서 건보개혁법안 찬성으로 돌아서 100년 만의 전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여는데 큰 힘이 됐던 그가 왜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하는지에 언론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었겠죠.
사실 건보개혁법안이 통과된 뒤로 스투팍은 진보-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먼저 티파티(보수성향 시민운동모임)측은 스투팍의원을 대표적인 건보 공적으로 지목한 뒤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는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까지 받았습니다. 진보쪽에서는 "정부지원금이 낙태에 지원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받아냈지만, 결국 낙태를 지지한 것 아니냐?"며 변절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본인으로서는 속상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겠죠. 미국 언론들은 일단 티파티측의 강력한 공세에,본인 뿐 아니라 가족까지 겨냥한 협박에 스투팍의원이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비난과 협박전화가 스투팍의 정계은퇴 결정에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스투팍 의원 본인은 "나는 30년 이상을 공직에서 보냈습니다. 경찰 공무원으로, 주 의원으로,그리고 연방하원의원으로…. 미시간에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정치인다운 발언으로 자신의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한 시민단체는 스투팍의원을 비롯해 일부 의원들이 의원윤리강령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미 의회측에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스투팍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인 셈이죠.
민주당측은 스투팍의원의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을 티파티의 무분별한 협박행위를 부각시키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협박했던 용의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상황에서 스투팍의원의 은퇴 선언이 나오자, 낸시 펠로시 의장은 "사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협박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경찰이 의원 협박범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상황인만큼 적극적인 공세의 호재로 삼겠다는 의도이겠죠.
정치에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어디가지나 상대적인 가치판단이라는 얘기일 겁니다. 지난 한 달 관심을 갖고 지켜봤던 미국 정치권도 많은 점에서 한국 정치권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습니다. 다만 의원들이 어떤 동기에서였든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보다는 조금 명쾌하고 빠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 은퇴선언이 영원한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되겠죠. 언제든 상원의원에 도전할 가능성도, 주지사에 도전할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미국에 있는 동안 지켜볼 정치인 가운데 스투팍이라는 사람이 한 명 더 추가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