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출장기 그 열번째.
제이미 올리버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서 질문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일단 첫 번째 질문부터.
Q. 한국 시청자들에게 오늘 당신이 밝힌 소원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A. 오늘 제가 TED에서 밝힌 소원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한 식생활 교육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각 가정에서 다시 요리를 시작하게 하고, 음식을 통해 비만과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TED에 참석한 많은 리더들과 함께 이 일을 해 나가는 건 정말 흥미로울 겁니다. TED에서 상을 받고, 이렇게 제 소원을 밝힐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잘 될 거라고 믿어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해 보죠.
제이미 올리버의 대답을 듣고 있는데, 앗! 이상하다. 카메라 오디오 게이지에 채널 1는 뜨지 않고, 채널 2만 뜨고 있었다.(채널 1은 마이크 소리를 잡고, 채널 2는 전반적인 백그라운드 음향을 잡는다.) 제이미 올리버에게 무선 마이크를 착용하게 할 때 내가 On-off 버튼을 켜지 않은 것일까. 어수선한 상황에서 하도 빨리 하라고 재촉하니까 정신이 없어서 이런 실수를 한 것일까.
카메라를 잡고 있는 이정애 기자도 뭔가 문제가 있는 걸 눈치 챈 표정이다. 이를 어떻게 하나. 중간에 끊어서 마이크를 켜고 다시 하자고 할 수도 없고…… ABC 제작진이 촬영까지 하고 있는 마당인데… 할 수 없다. 그냥 채널 2로 갈 수밖에. 소음이 없고 조용하니까 채널 2로 녹음된 오디오를 쓰는 것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김수현 바보 바보! 속으로 이렇게 자책하고 있는 동안, 제이미 올리버의 대답이 끝났다. 윽.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Q. 당신의 소원은 어떻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사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벌써 이 소원이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을 본 것 같은데요....A. 제 생각에 저는 좀 특이한 사람이에요.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죠.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이 미국이 잘못된 것들을 걸러낼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주 간단한 일이죠.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전면에 내세우면 됩니다. 미셸 오바마의 열정과 꿈은 꼭 실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셀 오바마는 4억 달러가 투입되는 '함께 움직입시다(Let’s Move)'라는 어린이 비만 퇴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는 강연에서도 이 캠페인을 지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미국 대중의 관심과 경제계의 지원이 필요하고 의회가 지지해야 합니다. 이제 시작해야 해요. 이런 일들은 원한다고 해서 바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TED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심고 마법 같은 일들을 이뤄내는 거죠.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심고 마법 같은 일들을 이뤄낸다'는 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의 화법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이 느껴진다. 궁금한 게 많다. 질문 하나 더.
Q. 당신이 '음식 혁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지금의 당신은 요리사이자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죠. 무엇이 당신을 운동가로 만들었나요?A. 사실 처음부터 '나는 운동가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예요. 저는 그저 TV 요리 프로그램을 했고, 이건 제 커리어의 시작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죠. 그러다 차츰 제가 알게 된 문제점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됐고, 이걸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엄청났어요. 사람들이 쇼핑을 다른 방식으로 하게 되고, 저와 의견을 같이 하고, 그 이상을 원하기도 했어요. 이런 식으로 제 자신을 찾아온 것 같아요. 당시에는 제가 또 다른 소명을 찾았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이렇게 되기를 바랐던 적도 없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난 거예요.
저는 10년 동안 제가 TV에서 할 일을 해 왔을 뿐이고 그 동안 저의 신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대중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자'였습니다. 제가 TV에 나와서 얘기를 시작할 땐 정말 바람직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만약 "좀 들어봐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보통 "네, 무슨 일이예요?"하고 반응했어요. 그렇게 해서 저는 영국에서 네 가지 정도의 운동을 벌인 셈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영국에서 '스쿨디너 캠페인'을 할 때, 제가 조사한 것 중에 최고와 최악의 사례가 모두 미국 얘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이미 미국의 식생활에 대해 굉장히 많은 조사를 한 상태였어요. 미국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적어도 5년 가량 해온 것 같네요. 그렇지만 미국인들의 식생활에 대해서 그 어떤 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죠. 전 아무래도 행운아인 것 같아요.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채널인 ABC의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에 나오게 됐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잖아요. 정말 신나요.
좀 더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더이상 시간을 끌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ABC 제작진은 우리 인터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정도면 뉴스에 쓸 얘기는 다 나온 것 같아서 인터뷰를 마쳤다. 카메라를 치우고, 마이크를 빼면서(역시나, 마이크가 켜지 있지 않았다!) 제이미 올리버에게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나도 영국에 1년 산 적이 있어요. 우리 딸들이 영국 학교에 다니면서 당신이 바꿔놓은 스쿨 디너를 먹었어요. 우리 가족도 당신의 도움을 받은 셈이죠. 고마워요."
제이미 올리버는 눈을 크게 뜨며 '정말이예요? 영국 어디에 살았는데요?'하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