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마쳐놓고 기사 안 나가는 경우,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자고 일어나면 대형 사건이 터지는 나날에는 그런 경우가 더 많습니다. 며칠 전 천안함 사건 두 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날 제가 취재했던 기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순식간에 늘어나는 천안함 리포트들에 묻혀 제가 취재한 '한국판 페이스 오프 사건'은 편집부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앞으로 이런 사건 관련 취재파일은 '리포트 재고대방출'이란 제목으로 전해드리려 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지난 2006년 강간 및 강도 혐의로 경찰의 수배가 시작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2002년부터 4년여 동안 무려 19차례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죠. 경찰은 몇 년간 이 남자를 쫓았지만 허탕이었습니다. 수배가 시작된 이후에도 몇 차례 절도 및 강도짓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죠.
경찰이나 기자나, 사건이 풀리려면 역시 제대로 된 제보를 받아야죠. 운 좋게 제보를 받은 경찰이 전라도 광주에 가서 피의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국 방방 곳곳에 깔려 있는 '내연녀' 가운데 한 명의 집에 숨어 있었답니다(근데 왜 꼭 이런 강력범죄자은 여자친구가 그리 많은 걸까요?...잡고 보면 항상 도처에 여자친구를 두고 숨어지내더라고요..) 어쨌든 경찰이 잡았는데... 암만 봐도 수배 전단지 사진이랑 얼굴이 달랐습니다. 수배 전단에는 턱선도 날카롭고, 눈도 쫙 찢어져서 매서운 스타일이었는데.. 잡고 보니 쌍꺼풀 있는 큰 눈에 복스러운 얼굴 윤곽을 가진 초로의 남성이었던 겁니다.
알고보니 '성형의 힘'이었습니다. 수배 된 직후 쌍꺼풀 수술을 받아 눈매를 바꾸고, 주기적으로 보톡스 주사를 맞아 얼굴 선을 '복스럽게' 유지해왔습니다. 여기에 어디에선가 훔친 남의 신분증을 사용하고 다니니 신분이 완벽히 은폐된겁니다. 숨어 있는 곳도 전혀 연고지가 없는(내연녀 집이라는 거 빼고..) 전라도 광주니.. 잡기가 어려울 수 밖에요. 경찰이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제보자'가 없었다면, 아마 영영 이 사람 못 잡았을 겁니다.
이런 사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도 유명한 사건이 있었죠. 이 때는 자기를 가르치던 영국인 여선생을 살해한 피의자가 얼굴을 완전히 성형해 도피하다 검거됐죠. 일본은 피의자 얼굴 공개가 합법적이어서, 방송에 대대적으로 before&after 사진이 났는데..솔직히 동일 인물로 보기 좀 어렵더군요. (궁금하신 분은 링크 클릭! 일본판 페이스오프 사건)
방송에는 낼 수 없었겠지만, 저도 경찰서에서 수배 사진과 이번에 붙잡힌 피의자의 얼굴을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음..솔직히 '완전 다르다' 정도는 아니어도, 수배 사진 한 장 보고 '이 사람이 이 사람이네..' 하긴 아주 어려운 정도더군요.
그러나 미학적인 관점에서는...좀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왕 할거면 좀...어쨌든 쌍꺼풀 수술 한 번 받고 4년 동안 잘 숨어지냈지만..결국 잡히기 까지 했으니... 좀 잘 해보지 그랬어요.. 이 피의자, 결과적으론 돈만 버린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혹시 기회 있음 다음엔 다른 성형외과 가보시길...아마도 20년 이후나 가능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