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 재판이 한창 진행 중 입니다. 한 전 총리가 인사청탁 대가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미화 5만달러를 받았느냐, 골프채를 선물로 받았느냐가 핵심인데요.. 검찰 조사 때 '돈을 줬다'고 진술한 곽 전 사장은 법원에서 <직접 준 건 아니고, 의자에 놓고 왔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자 한 전 총리 변호인 측은 "거봐라!!"며 의기양양해 하고 있고 검찰은 누구한테 뭐라고 말은 못하고 눈치보며 진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뇌물사건은, 종종 돈 준 물증이 명확히 남지 않아서 돈을 줬다는 사람의 진술이 대부분인 경우가 있습니다. (돈 주기 전에 돈세탁도 열심히 하고, 남들 모르게 전달하니까요) 그래서 이 경우는 돈을 건넨 사람의 <일관된 진술>이 대단히 중요하지요.
'뇌물'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죄목인데요, 뇌물수수죄는 다른 잡범들에 비해 형량이 꽤 무겁습니다. 형량도 형량이지만, 공직자의 핵심인 청렴성에 흠집이 가는 일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는..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테고요. 그래서 간혹 물귀신 작전을 쓰는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뇌물사건의 경우는 진술과 함께 평소 두 사람의 관계, 두 사람의 지위, 당시 상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명확한 물증이 없는 뇌물사건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을텐데, 이번 한 전 총리 사건의 경우도 뚜렷한 물증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재판부도 그렇지만 범죄 혐의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검찰 역시, 곽 전 사장이 법정에서 기존의 진술을 바꾼데다가 여러 부분에서 "기억이 잘 안난다"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모양입니다.
한 전 총리 수사는 서울 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담당했는데요, 특수2부는 3차장 검사가 지휘하고요, 1,2,3차장검사 위에는 중앙지검장이 있습니다. 차장, 부장 뭔가 복잡하지요? 이해가 쉽도록 중앙지검을 고등학교에 비교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중앙지검장이 교장선생님이라면, 3명의 차장검사는 교감선생님 쯤 됩니다.(교감이 3명인 거죠 그럼)
1, 2차장에 비해서 중앙지검 3차장은 요직으로 분류되고 있는데요. 3차장 산하 여러 부장들 중에서 꽤 잘나간다는 부장이 특수1,2,3부장 입니다. 특부부장을 학년 주임쯤으로 이해하시면 되니까.. 특수2부장은 2학년 주임 쯤 되겠네요. 보통 중앙지검에 위치한 반장 이하 잡진 두어명이 이 분들과 자주 통화를 하지요.
지난 주 일요일, 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각 사 1진들에게 직접 '전화마와리'를 돌았습니다. (전화마와리란 기자들이 쓰는 은어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기자가 무슨 이런 요상한 은어를 쓰는가하는 문제는.. 음.. 일단 차치하기로 하고.. ^^;)
기억하시죠? 법조1진. 산전수전 겪고, 휴일에는 회사에서 데스크 보신다던 법조팀장님들. 일반적인 경우라면 3차장이 기자실로 내려와 브리핑을 하고 질의응답을 한 후, 이를 취재한 휴일근무자들이 반장과 팀장에게 보고를 하는 식으로 이뤄졌을 겁니다. 실제로 이 날 한명숙 전 총리의 변호인단이 중앙지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보통 이렇게 변호인 측 기자회견이 있는 경우, 검찰은 기자실 간사를 통해 공식 입장을 전달하곤 합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통화를 하지만, 똑같은 답변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설명은 상당히 간단합니다.
특히나 3차장은 기자들 전화를 안 받기로 유명한 분이어서 평소 태도와 달리 직접 팀장들에게 전화를 돌려 변호인 측 주장을 구구절절 반박하고 주장하는 이례적인 전화마와리가 생소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쩝.. 오죽 급하면 저럴까' 싶은 생각만 들더군요.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지고 회사에서 이를 한 번 걸러서 보고 받으면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고 걱정한 걸까요? 수사에 자신이 있다면 법정에서 혐의를 입증해내면 될 것을. 어딘가 모르게 좀 군색해 보였습니다.
..........
한 달 쯤 전인가요? 검찰은 민노당 관계자들이 검찰에 고소장을 내러 오는데 '민노당 관계자들이 청사에 몰려와 소란 피울 것이 예상된다'면서 민원실이 있는 청사 안으로 방송, 사진 기자들의 출입을 막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청사 민원실에 고소장 내러 오는 경우는 고소인들이 거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촬영이 자유롭거든요. 공공기관에다가 서류 내는 걸 본인이 허락하는데 무슨 이유로 막겠습니까.
소란이 예상된다던 검찰 측 반응이 어이 없기도 했지만, 만약 그렇다면.. 출입을 통제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확인해 봤습니다. 현장에는 민노당 관계자가 무려 2명이나 있었습니다. 몇 분이나 더 오시냐 물었더니 서너명 더 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검찰 측에, 민노당 관계자는 변호사를 포함해 5명 남짓이어서 충돌은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을 알려줬지만(취재진이 훨씬 많았으니까요) 결국.. 청사 안으로 들어가 고소장 제출 장면을 촬영하지는 못했습니다. 직접 팀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는 그 친절함을 그 때는 당췌 찾아볼 수 없었던 거죠.
...........
검찰은 오늘 재판에서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의 회원권으로 골프를 친 사실을 확인했다며 법원에 관련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물론 이번 사건의 돈 받은 시기와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고, 한참 후의 일입니다. 곽 씨가 보유한 제주의 고급 골프빌리지를 29일간 공짜로 사용하고, 골프비도 일부 곽 전 사장이 내줬다는 겁니다. 변호인 측은 공소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고요 검찰은 두 사람의 친분관계를 확인했다며 핏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재판부가 어떻게 결정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재판부가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검찰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에겐 흠집이 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이 쥔 카드가 이 정도라면.. 재판 결과가 어떨 지는 두고봐야 할 듯 합니다. 앞으로 공판이 몇 번 남지 않았으니, 모두들 재판 결과를 찬찬히 지켜 보십시다.
물론 이 순간에도 묵묵히 거악척결을 위해 스스로 밤잠을 마다하고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검사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수고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며 일하고 있는 출입기자로서 그 수고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어디에 큰 칼을 휘둘러야 하는지 결정하는 분들이 계속 이렇게 뭔가 군색하고 속좁아 뵈는 일들을 계속하시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중대한 실수 몇 번으로, 검찰조직 전체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