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30년 일본은 조선인들을 강제로 끌고가 석탄과 금등 광물을 캐는 일을 시키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내는 토목공사에도 활용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에 나라를 잃은 우리 할아버지들은 어찌할도리없이 말도,물도,공기도 낯선 이역만리 타국에서 노예같은 강제노역에 시달렸습니다. 유독 위험하고 험한일을 강요받다보니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쉽지않았고 대부분 낯선땅에서 한많은 삶을 마감해야했지요.
그시절 시즈오카현 시미즈지역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을한 조선인들은 400-600명이었으나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발발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이 한창일때 무려 2천-3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목숨을 잃고 산천에 뭍힌 조선인94명이 3월10일 유골로 고국땅에 돌아왔습니다. 70-80년이란 세월탓에 신원을 찾을수없던 무연고유골76위는 천안 망향의 동산 합장묘역에 안장됐고 그나마 이름과 가족.친지를 찾은 18위는 납골당에 모셔졌지요.
한많은 삶을 살다 영혼마저 일본땅을 떠돌던 이들을 고국으로 모셔온 사람들은 일본내 대한민국민단 회원과 조총련 소속 교포들입니다.
폭설이 내려 온천지가 솜이불을 덮어쓴것 처럼 변한 10일오전10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조선인유골봉환추진위원회 사무국장 이호기, 고문을 맡고 있는 구용서 옹, 민단 시미즈지부 지단장 정인모 씨등 10여명이 조선인 유골 봉환및 안장행사를 했지요. 일본정부는 물론 우리정부의 도움없이 민간차원에서 조선인 유골봉환사업을 한것입니다.
이호기 사무국장과 구용서 고문은 봉환사업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하며 정부의 무관심에 서운해 했습니다. 지난 2004년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고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조사와 심사등의 일을 해왔지만 강제징용됐다 숨진 조선인들의 봉환사업에 대해선 소홀했던것 같습니다.
망향의동산에서 열린 안장식에도 정부관계자의 얼굴은 찾을수없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강제징용 할아버지들의 넋은 조국의 사랑과 보호를 받지못하는 딱한 신세가 돼 안타까웠습니다.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하기전에 조금 더 적극적인 활동과 지원을 기대합니다.
6.25뒤 일본으로 건너가 민단활동을한 올해82세 구용서 고문은 뒤늦게나마 고국의 품에 잠든 영령들에게 이렇게 추도사를 했습니다.
"고향땅을 밟지못하지만 천안 희망의 동산에 묻히는것을 알아두시고 수십년간 고독한 생활속에 이곳에 옮겨와 우리마음도 흐뭇합니다. 원하시던 고향땅.하늘아래에서 영면하시길 빕니다"
강제징용 할아버지들이여! 조국과 후손을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