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남매를 낳아 키웠다. 아들 셋, 딸 둘.
판검사 아들 딸은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게 자랑스러운 자식들과 남편이 있어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여생을 꿈꿨다.
막내 아들까지 어엿한 직장인이 된 1987년.
갑자기 평생을 함께해 온 남편을 잃고 허리 디스크를 앓기 시작했다.
5남매를 뒷바라지한 뒤 남은 '훈장'이겠거니하고 참기에는 힘든 고통이었다.
10년을 넘게 친구처럼 몸에 안고 살던 디스크가 이제 예순이 넘으니 견딜 수 없는 소통으로 다가왔다.
몸은 갈 수록 무거워져갔고, 움직이는 순간순간이 고통이었다.
자식들은 홀어머니의 아픈 허리 하나 치료 못 하는게 말이 되냐며 백방으로 병원을 수소문했고, 한다하는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말끔하게 나은 모습으로 손자,손녀들을 안아줄 어머니를 꿈꾸며, 아버지께 해야할 효도까지 모두 모아 하겠다고 다짐했다.
2003년 6월 17일.
수술 직후에는 성공적인듯 보였다. 하지만 수술 1시간 30분이 지난 뒤 할머니의 하반신에는 감각이 없었다.
취가 덜 풀렸다고 보기에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수술 도중 지혈이 안 돼 수술 몸 안에서 피가 뭉쳤고 이게 원인이 돼 결국 할머니는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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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7년이 지났다.
할머니의 몸은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탓에 더 무거워졌고,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얼굴은 항상 부어있었다.
간병인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노구가 됐다.
어머니의 아픈 허리를 안타까워하던 자식들도 어느새 지쳤다.
안타까운 마음과는 별개로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자식들을 위한 인생을 살기에 바빴다.
큰 아들은 집을 팔아 어머니의 병수발 비용을 댓다. 그래도 큰 아들이니까. 내 어머니니까.
그나마 7년동안 입원비와 물리치료비를 내지 않아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7년만에 받아든 1억 2백만원의 병원비 청구서에 큰아들은 더욱 맥이 풀렸다.
"병원비를 내든지 나가든지 결정해라."
둘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아픈 허리 고쳐보겠다고 병원을 찾은 어머니가 7년을 누워있었는데 이제와 나가라니 서러움이 북받쳤다.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직장도 잃었다.
병원측 과실은 없다면서 어찌된 일인지 병원에서는 7년동안 병원비를 내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느 종합병원에서 7년동안 병원비를 내지 않은 환자를 그냥 놔두냐고 그러니 처음부터 니들이 미안한게 있으니 그랬던 것 아니냐며 따졌다.
"법대로!" 돌아온 답은 늘 같았다.
큰 아들은 결국 어머니가 누운 병상을 강제로 들어내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다.
병상을 옮기는 길목에 드러누워도 보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7년을 누워계시면서도 고통스런 물리치료 만큼은 오히려 즐기셨던 어머니.
언젠가 목발을 짚고라도 걸을 수 있다고 믿는 어머니에게 큰 아들은 이제 해드릴 게 없어졌다.
어쩌면 병원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이미 할머니가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했는 지 모른다.
오로지 할머니만 그 희망을 계속 이어가고 계실 뿐. 이제 큰 아들에게도 걷고 못 걷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머니의 희망을 깨지 않는 게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