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U포터] '뮤지컬 메노포즈' 울 엄마도 여자이고 픈 세월이 있었구나!


Google 즐겨찾기에 SBS뉴스 추가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뮤지컬〈메노포즈〉속 이영자가 전화기에 대고 읊조린 대사였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는지, 내 뒷줄에 앉아 있던 늘그막한 중년 아줌마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억제하고 싶지만 누를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나온 것이다.

그 분의 울음소리는 울 엄마가 겪었을 중년을 불러 일으켰다. 무대에선 이영자와 홍지민, 이윤표와 김현진이 중년의 고독과 애환을 함께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 무대를 메운 것은 순전히 내 어머니의 늙어가는 영상들이었다.

왜일까? 그녀들은 늙었으나 남편도 있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만 그나마 가정 울타리를 지켜주고 있고, 40대 후반이나 아직 혼인을 꿈꿀 수 있는 미혼이다. 하지만 울 엄마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49살 때 홀로 되신 터라, 울 엄마가 겪었을 그허전함과 외로움들이 잠잠해 있던 내 의식을 불러 세운 것이다.

지금껏 25년 동안 내 어머니는 시골에서 밭과 논을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그 고독과 애환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었을까? 일찍 남편 여의고 홀로 처량하게 살아 온 과부였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좋아하는 사람 나타나도 립스틱 한 번 짙게 바르지도 못했고, 연애도 한 번 못 해 보셨다. 하루저녁만 지나고 나면 그 전날 논밭에서 뒹굴며 한 이야기들이 동네방네 쫙 퍼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대 위에서 모두들 뜨거운 밤들을 열연해 주고 있었는데, 울 엄마는 어떻게 그토록 불타오르는 밤들을 이겨냈을까. 그저 가만히 있어도 온 몸에 열이 오르고, 식은땀이 줄줄 아 오르는, 그래서 온 몸을 목욕하다시피 보내는 그 젊은 날들을 어떻게 견디어 내었을까.

중학교 2학년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또 1년을 넘게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나였지만, 그것 하나 눈치 채지 못하고 곰처럼 보냈으니, 얼마나 미련스런 아들이었단 말인가.

갱년기 때 울 엄마가 겪었을 그 고독감과 애환들은 어쩌면 〈엄마가 뿔났다〉를 보지 못했더라면 좀체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울 엄마도 때론 립스틱 짙게 바르고 연애도 한 번 해 보고 싶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다.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내 병아리 새끼들 잘 있냐?'고 내 아이들 안부를 물어올 때면 언제 그랬냐 싶기 때문이다.

〈메노포즈〉속 네 여성들은 모두가 갱년기 약을 먹고 있었다. 또한 주름살을 제거해 준다는 보톡스도 맞고 있었다. 손가방 속에 TV 리모컨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건망증도 심했다. 회의를 주제할 때도 건망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뻥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 한다.

광고
광고 영역

그게 갱년기 여성, 폐경기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타는 흐름일 것이다. 그런데 울 엄마에겐 과연 그것을 먹거나 맞을 여유가 있었을까. 아니 시골 촌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런 게 가슴에 와 닿기나 할까. 비록 마음엔 와 닿긴 할지라도 현실은 너무 멀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루 종일 뙤약볕 들판에 뒹굴다 보면 손과 발이 흙으로 범벅이 되었을 테니, 언제 그것을 먹거나 맞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 분들에겐 흙과 농작물 자체가 호르몬 주사이자곧 보톡스이지 않을까.

다만 뻥과 잔소리는 무대 위 여성들보다 더욱 심할 것이다. 울 엄마도 허구한 날 욕과 잔소리를 해 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농촌 삶의 중심에 서 있는 남자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함이란 걸, 난 알고 있다.

여성 호르몬이 다 사라져, 무늬만 여자야.

〈메노포즈〉속 합창을 하던 이 노랫말 앞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컥 울음이 솟구쳤다. 그 합창 속으로 울 엄마의 가냘픈 몸이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72살, 울 엄마가 고관절에 결핵균이 생겨, 그것을 다 제거하고 인공관절을 쑤셔 넣던 바로 그때, 늦어도 너무 늦은 그 때였지만,그때서야 난 울 엄마가 무늬만 여자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날 이후 울 엄마는 더 급속하게 줄어들고 가늘어졌다.더 이상 오므라들 데라곤 하나도 없이 온통 쭈글쭈글해 졌고, 더 이상 가늘어질 수 없는앙상한 뼈만남았다.

그토록 곱디 고운 처녀 적 모습은 오간 데 없고 온통 꾸부정한데다 쇠약해진 꼬부랑 할머니 그 자체였다.어머니 배속에서 나온일곱 아들 딸들이엄마의뼈마디를그렇게갉아먹었을 것이다.

뮤지컬이 끝나고, 그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춤을 추던 중년의 여성들 모습이 내 눈엔 아직도 흐뭇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아마도 스크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다른 맛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동안 못다 푼 중년의 고독과 애환과 설움들을 한 바탕 풀던 그 무대를 바라보노라니, 언젠가 시골동네에 들썩거렸던 놀이패들이 들어 왔을 때, 그들 틈 사이에서 함께 동네 분들과 춤을 추던 울 엄마의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난 그들 틈에 끼여 술을 한 잔 기울이며 춤을 추던 울 엄마를 너무나도 부끄러워하며, 못 마땅한 눈치를 줬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엄마의 몸부림이자 또 다른 해탈의 시간이었는데도, 엄마의 그 응어리진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무쪼록 뮤지컬 〈메노포즈〉는 울 엄마의 중년기과 갱년기 그리고 폐경기를 한 데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울 엄마도 진정 여자이고 픈 세월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서야더 실감케 된 무대였다.

그렇지만 그런 고독과 애환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견디어온 울 엄마에게 너무나 죄송할 따름이고, 그 모진 기간들을 묵묵히 참고 이겨내 온 울 엄마에게 경의를표한다.

권성권 SBS U포터

http://uporter.sbs.co.kr/littlechri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송고됐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