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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타임오프제 "고진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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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내는 연차휴가마다 족족 취소되고 밤낮, 평휴일 구분없이 일에 매달려야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노사정이 사활을 걸고 다투었던 '노조법 개정안'때문이었죠.

'올해 7월부터 전임자 임금 원칙적 지급 금지', '내년 7월부터 전사업장에 창구 단일화 전제로 한 복수노조 활동 허용'이 핵심인 이 노조법 개정안은 결국 새해 벽두인 1월 1일 새벽에 통과됐습니다.

그후 환노위원장인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은 소속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아야 했고, 정부부처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의 입지는 수직상승했으며, 노동계의 큰형님 격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서로 견원지간이 됐고, 경영계에서는 현대차 등의 노조법 원안추진론자와 경총을 대표로 한 협상파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이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기록했던 취재기자의 인생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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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똑같다"입니다.

휴일이었던 1월 1일과 3일 출근해 8뉴스를 제작해야했고, 가족들 얼굴 대신 임태희 장관과 정종수 차관, 이채필 기조실장 등의 얼굴을 봐야했습니다.(요즘은 사회부때 거리에서 땀냄새 맡으며 친해졌던 노동계 인사들처럼, 이분들에게도 묘한 인간적인 정을 느낍니다.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를테면 '미운정, 고운정'이라는거죠.) 그리고 2월 13일도 출근해 이 글을 쓰고 있군요.(15일도 벤쿠버 올림픽때문에 출근해야 합니다.)

'고생끝에 락(樂)이 온다'고들 하지만, 이지경이라면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마져도 거부해야할 정도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 '樂'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노조법을 둘러싼 공방이 2라운드에 접어들무렵인 1월 3일. 저는 텅빈 과천청사 기자실에 홀로 출근했습니다.

당시 기자실에서는 '개정 노조법이 조금 엉성하긴 하지만, 이제 논란은 끝난 것 아니냐'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신정 연휴인 3일, 타사 기자들의 출근을 안했던 이유는 단지 휴일이어서만은 아니었을겁니다.

바로 그 3일, 저는 다음주 발표 예정인 노조법 개정안 시행령의 핵심 내용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휴일에 나왔으니 고생했다"며 취재원이 던져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재는 이른바 타임오프제의 원형에 대해 궁금함을 가졌던 기자의 호기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실질적인 노조업무 시간에만 예외적으로 사측이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부담하는 '타임오프제'는 유럽에서 건너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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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개정 노조법이 규정하고 있는 '타임오프제'가 과연 유럽식과 같은 것일까?'라는 부분에 대한 해답은 아무리 취재를 해봐도 찾아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타임오프제가 그 타임오프제 맞아요?"

제가 노조법 제정에 참여한 노동부 핵심 간부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습니다.

유럽식 타임오프제는 임금지급을 인정해주는 '타임오프' 시간 총량을 노조가 알아서 배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측이나 정부가 '연3천시간에 대해서는 노조활동을 하더라도 임금을 주겠다'라고 기준을 정하면, 이 시간 총량을 노조 전임자 2명이 1500시간씩 나눠쓰든, 3명이 1000시간식 나눠쓰든,  아얘 30명이 100시간씩 나눠쓰든 그건 노조 자율 재량이었습니다.

유럽식 타임오프제가 이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타임오프제가 전임자 수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노조활동을 임금을 받아가면서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죠.(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근 민주노총의 주장도 아얘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의문이 생깁니다.

"그럼 우리는 왜 타임오프제를 도입하는 거죠?"

여기에 대해서, 정부 관계자들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전임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죠."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우리가 도입하는 타임오프제는 유럽과는 전혀 목적이 다른 타임오프제와 다릅니다' 라는 말이 되겠죠.

그렇다면 이른바 '한국식 타임오프제'가 어떻게 달라져야, 정부의 노조법 개정 취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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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수학 방정식 풀 듯, '역계산'이 필요했습니다.

"그럼 전임자 수의 상한선을 정하고 유럽식 타임오프제를 적용해야겠네요? 그런데 노조법 개정안에 이 내용이 없으니 시행령에 넣으셔야겠네요?"(저는 아직까지도 별로 총명하지 않은 제가 스스로 이 답을 이끌어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거 어떻게 아셨죠. 아시는 분들 아직 없습니다."

취재는 대충 끝났지만, 기사는 닷새 뒤인 1월 8일날 썼습니다.

'타임오프제의 구체적 내용 확정하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기득권 인정' '노사정 추천 위원 임기 5년, 연임가능' 등의 추가 팩트들이 취재돼 더해졌습니다.

방송은 시행령 발표 하루 전날인 1월 10일 하기로 하고, 준비하고 있었지만, 방송날짜는 사흘 앞당겨졌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끝마쳤다는 것을 안 노동부가 갑자기 엠바고를 걸겠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죠.

마침 비장의 카드가 있었고, 기사는 '단독' 타이틀로 1월 8일 8뉴스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기자들은 저뿐만 아니라 Blackmailing의 달인들입니다. 국가권익위에서 평가한 노동부 청렴점수가 취재정보로 확보된 상태였습니다.)

시행령은 다음주 월요일인 11일날 발표됐고, SBS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안 타사가 일제히 확인보도뿐만 아니라 해설기사, 사설을 내보냈습니다.

올해 처음 건진 '특종기사'로 저는 휴일 상관없이 땀흘려 일한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사내 특종상과 한국기자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달의 기자상' 후보로 추천됐습니다.(물론 실제 상을 탈지 못탈지는 모릅니다.)

취재한 기사가 같은 회사나 동종업계 경쟁 선수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이는 꿀통에 혀를 깊숙히 담근 곰마냥 신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苦盡甘來를 느껴보고자,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도 일하고 있습니다.

모든게, 소박하지만 달콤하기 비교할 때 없는 그 '특종'의 유혹때문이죠.

'특종 중독',  시청자나 독자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보람과 기쁨 이외에도 기자의 지친 어깨를 펴줄 수 있는 그야말로 소중한 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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