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우리 의료팀이 일하고 있는 컴뮤니티 병원에 도착한 건 1월 26일 오후 4시경이었다.
아이티 포르토 프랭스에 강도 7의 지진이 발생한지 11일이 지난 후였다.
그녀를 이 병원으로 후송시킨 건 아이티 현지에서 의료 봉사를 나온 한국국제협력단 소속 의료진이었다. 한국 국제협력단 의료진은 집이 무너져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른 바 난민촌 진료를 나갔다가, 왼쪽 발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나타차를 발견했다.
나타차가 도착한 시각에는, 그것이 바닥이든, 야외 천막이든 이미 모든 병실이 환자들로 꽉 차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미 너무 흔한 일이었다. 이 병원을 총괄하고 있는 미국 의료진은 나타차의 입원을 요구하는 한국 의료진에게 정식 입원 절차를 밟아도 좋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내일까지는 병실과 수술방을 마련해 주겠다는 의지였다
정식 입원 절차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돈 받을 것이 아니기에 우리나라에서처럼 보증인이 필요 없다. 간이 입원장에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가족관계를 기입한 후 진단명과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를 적으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료방침을 설명들을 수 있는 생존한 가족을 체크하면 된다.
열여덟 살의 나타차는 가족관계에 여동생만을 기입했다. 그리고 여동생은 이 병원 어딘가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나타차의 입원수속을 마친 한국 의료팀은 평소보다 조금 늦은 오후 6시쯤 텐트가 있는 베이스 캠프로 이동했다. 미국 군의 보호를 받는 미국 의료진과는 달리 우리는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야 했는데, 벌써 해가져서 어두웠다.
다음날 아침, 정식으로 입원돼 있는 나타차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의 수술은 우리 의료팀이 맡고 있는 4번 수술 방에 스케줄이 올려져 있었다. 책임자인 미국 의료진이 밤사이 어려운 약속을 지킨 것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외과 전문의, 정형외과 전문의, 그리고 신경외과 전문의인 기자, 이렇게 4명이 나타차를 병실에서 수술 방 대기실로 옮겼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제는 없었던 중년의 남자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19세기 초에 독립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말을 쓰는데, 현재 프랑스인이 쓰는 말이 아니라 , '크레올' 말이라고 해서 일종의 프랑스 사투리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현지 통역사가 없으면, 그들과의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지 통역사를 통해 그가 나타차의 아버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나타차에게 어머니와 여섯 형제, 그리고 두 살배기 딸이 있었고, 이번 지진으로 어머니와 여섯 형제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나타차의 딸은 지진에서 살아남았지만 구호소를 전전하다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처지가 됐고, 나타차는 곁에 있는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조차 알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은 견딜 수 없는 사실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거부하게 된다. 이를 표면적으로 보면 단기기억 상실이다, 여섯 형제와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딸아이의 실종....
그녀가 살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실을 기억 속에서 지우는 것 뿐이었을 게다.
나타차의 수술은 원래 4번 수술 방에서 2번째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미국 의사가 안구 적출술을 급하게 해야 한다며, 3번째로 미뤄졌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면서 수술 방 상황을 이리저리 살피는 중에 수술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나타차가 말을 건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당연히 수술에 대한 걱정일 것이라 생각해서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Don’t worry"라고 말해주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갔다. 두 시간 정도 후에 다시 수술방 상황을 알아보러 들렀을 때 나타차는 강력하게 내 손목을 잡고 말을 걸었다. 또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잡은 손목을 놓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현지 통역사를 불렀다.
아이티는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 수술 방에는 에어컨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오랫동안 누워 있다면, 상당히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타차는 춥다고, 너무 춥다고 말한 것이었다. 그 말을 이해 못해 걱정하지 말라 말하고, 두 시간 동안이나 그녀를 떨게 했던 것이다. 수술 방을 뒤져 이불로 그녀를 덮어 주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미안하다고, 추운지 몰랐다고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우리말로 용서를 빌었다. 그녀는 수술 방에 들어갔고, 날이 어두워져 우리 의료팀은 그녀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