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종성, 연작소설 10편 묶은 <마을> 펴내
1994년, 도시와 농촌 사이에 놓인 '양극화'란 화두를 뿌리 뽑고, 농촌을 도시를 감싸는 친환경생태도시로 바꾸겠다는 정부 정책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도농 복합도시. 16년이 지난 지금, 그 도농 복합도시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네온사인처럼 휘황찬란한 것처럼 보이는 도시문명이 농촌을 살갑게 껴안고 있을까?
작가 김종성은 연작소설집 <마을>에서 도농 복합도시 '초림'에 대한 은유로 담배식물이 기형으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비춘다. 담배식물에서 종종 발견되는 프렌칭(frenching)이라는 이 기형은 담배 싹과 줄기가 자라지 못하게 하고, 담배 잎 겨드랑이에 싹을 틔워 엄청나게 많은 잎을 피우는 '괴물식물'이다.
그에게 비치는 도농 복합도시 '초림'은 프렌칭처럼 '괴물도시'에 다름 아니다.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초림'이란 도농 복합도시는 욕망(도시문화)과 좌절(농촌문화)로 얼룩져 있다. 싹(희망)과 줄기(삶)가 자라야 할 농촌에는 헛된 꿈만 흐르고, 생태계마저 골프장과 아파트 건설 등으로 깡그리 무너지고 있다.
1980년대 끝자락부터 생태환경소설을 줄곧 발표하고 있는 작가 김종성. 그가 바라보는 '초림'은 헝클어진 실타레처럼 어지러운 '도시인들 욕망'이 농촌을 동네북으로 삼아 마구 춤추는 곳이다. 까닭에 '마을'이란 이 소설집 제목만 보고 행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원수)처럼 정겨운 마을을 떠올렸다면 크게 실망하리라.
소설이란 현미경에 비추는 도농 사람들 '욕망과 좌절'
"연작소설 <마을>을 구상한 지 십 년이 넘었다. 서울 강남역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면 닿는 초림이라는 도농 복합도시의 용담면 사곡마을이 연작소설 <마을>의 무대다... 나는 특히 우리나라 행정단위 가운데 '면'에 주목하였다. 면사무소, 파출소, 단위농협은 '면'을 움직이는 권력기관들이다."-'작가의 말' 몇 토막
<탄>(炭) <금지된 문> 등에서 환경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작가 김종성(58)이 연작소설집 <마을>(실천문학사)을 펴냈다. 모두 10편으로 이어지는 이 연작소설은 서울을 꿈꾸며 시골 한 귀퉁이에 내버려져 있는 도농 복합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욕망과 좌절, 생태계 파괴 등을 '소설'이란 현미경을 들고 낱낱이 비추고 있다.
'전망 좋은 아파트', '메뚜기는 없다', '색맹에 대하여', '종소리', '빈들에도', '엘리베이트의 여자들', '손님', '춤추는 몬스터', '장난감을 위하여', '동제'가 그것. 김종성은 이 10편에 이르는 연작소설에서 농촌이면서도 도시이고, 도시이면서도 농촌인 도농 복합도시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사람들과 날이 갈수록 자빠지는 농촌 생태계를 마구 꼬집는다.
김종성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울특별시에서 근교로 뻗어나간 아파트 단지의 파도는 '면'의 권력구조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말한다. 그는 "환경문제는 사회문제에서 나왔으며 환경 위기의 원인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 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 논리에서 기인한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농촌 허물고 들어선 전망 좋은 아파트에도 '부동산 투기벌레'가 가득
"'아파트 단지 사업부지가 아직 농지로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대망기획 국내 영업부 과장인 윤안수가 서류가방에서 등기부 등본을 꺼내 주택계장 앞으로 내밀었다. / 드림랜드 아파트 단지 사업부지가 택지로 전환되지 않고 아직 그대로 농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초림시청과 유성주택의 유착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28쪽, '전망 좋은 아파트' 몇 토막
<마을> 첫 머리에 나오는 '전망 좋은 아파트'는 서울에 살던 소시민 성준기가 '생명이 더불어 사는 환경생태도시' 초림에 있는 드림랜드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준기는 건설사 부도로 아파트단지 공사가 6년 동안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3차 부도가 난지 6년째 되던 해 가을, 성준기에게 유성주택 사장 이정훈도, 드림랜드건설 사장 윤종무도 아닌 경향부동산 투자개발 사장 염오균 이름으로 된 안내장이 날아든다. 이 안내장에는 드림랜드 아파트 단지 사업부지 시행권을 자신들이 인수했다는 것과 빠른 시일 안에 공사를 다시 시작하겠으니 가구당 분양금을 2천만 원씩 더 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왜? 샹그릴라 골프장 가까운 곳과 삼봉산에 복합 리조트 단지가 들어서고, 용담 저수지가 생태공원으로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드림랜드 아파트 단지 사업부지에서 가까운 땅값이 오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입주 예정자들은 중도금 융자를 회사에서 알선해 준다는 소식에 전망 좋은 아파트 한 채를 갖게 된다는 기쁨에 가득 차 있는데...
'문명'이란 껍데기를 쓴 도시가 농촌을 망친다
"'여보, 가을이 되면 저 논에도 메뚜기가 뛰놀까?'
남편이 벼를 베어내고 근모(뿌리털, 根毛)만이 촘촘히 박혀 있는 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 '있을 거예요......그런데...... /' 나는 말을 더듬거리며 '샹그릴라컨트리클럽 입구 2km'라는 이정표에 눈길을 던졌어." -39쪽, '메뚜기는 없다' 몇 토막
'메뚜기는 없다'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사곡마을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좌절 등을 담고 있다. 주민들은 송전선로가 처음 계획했던 샹그릴라 골프장 위가 아니라 마을 한가운데를 지난다는 소식에 초림시에 거칠게 항의한다. 하지만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똥배만 쑤욱 내민다.
'종소리'는 드림랜드 아파트 입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갈등을 그린다. 아파트 주민들이 원주민들이 꾸리고 있는 개 사육장에서 나는 소음과 악취에 대한 대책을 바라는 민원을 낸다. 파출소장은 "농촌에서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울 수 있는 거"라며 "그런 걸 따지고 하려면 이사 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색맹에 대하여'는 우리 사회에 부풀고 있는 학벌 중심 교육에 따른 껍데기를 속내 깊이 파헤친다. '빈들에도'에서는 허울뿐인 권력욕을 신앙심으로 착각하는 종교를, '춤추는 몬스터'에서는 도시민들을 따라 들어온 사교육 학원 경쟁을, '장난감을 위하여'에서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자본권력을 따갑게 매질한다.
촌티를 싹 벗으려면 장례문화센터를 유치하라?
"'......사곡마을도 촌티를 싹 벗겨내야 합니다. 닭이나 키우고 개나 키우는 1차 산업은 이제 우리 초림시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몇 차 산업이 알맞을까요? 3차 산업 다시 말해 서비스 산업이 알맞은 거예요. 그래서 사곡마을의 뜻있는 분들이 초림시에서 추진하는 장례문화센터를 당골에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는 겁니다.
우리 초림시에서는 장례문화센터를 유치하는 마을에 엄청난 인센티브를 주니까, 장례문화센터를 유치하면 사곡마을의 촌티를 확 벗겨낼 수 있을 겁니다.'
말을 끝낸 이정만의 입가에 주름살이 깊게 팼다. / 그때였다. 성준기가 드림랜드 아파트 입주민을 이끌고 공청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 소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농촌마을은 서울 강남역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초림시 용담면 사곡마을이다. 초림은 그렇잖아도 사람이 너무 많은 수도권으로 계속 몰려드는 사람을 분산시키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농촌을 볼모로 만든 도농 복합도시이다. 따라서 초림은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다시 서울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사는 중간지대이다.
단편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이 연작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서울에 일터가 있지만 값싸고 전망 좋은 집을 찾아 이사 온 아파트 주민들과 대대로 농촌에서 살아오다 도시민 때문에 터를 빼앗겨 갈팡질팡하는 원주민들, 그리고 면장, 파출소장, 단위농협조합장 등 농촌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김종성은 이들이 아웅다웅 뒤엉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도농 복합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우울한 자화상을 아프게 그린다. 자본과 권력, 아파트숲과 골프장, 화장장 건설 등으로 점점 변해가는 농촌과 도시민 흉내를 내는 농민들, 서울에서 밀려났거나 전망 좋은 아파트를 찾아 나선 도시민들이 저지르는 욕망과 생태계 파괴 등...
김종성 연작소설 <마을>은 화려한 문명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서울에서 삭여내지 못하는 오물덩어리를 농민들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받아 들여 소화시켜야 하는 21세기 우리 농촌과 농민이 겪어야 하는 깊은 상처와 피멍을 뼈아프게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마을은 이제 더 이상 마을도 도시도 아닌 '허깨비'에 불과하다.
경계인들을 소설로 그려낸 인간 생태학
작가 김종성은 "한곳의 일터에 붙박이로 있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경계인들이 집값이 싼 곳을 찾아 몰려든 곳이 도농 복합도시 초림? 용담면 사곡마을이라는 경계지대"라며 "연작소설 <마을>에서 농촌의 어메너티 상실문제를 다루면서, 도시도 농촌도 아닌 경계지대에서 살아가는 경계인들의 인간 생태학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가 송하춘은 "외촌동은 서울 변두리에서 소외받는 특수지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도시와 농촌이 복합된 곳, 그러면서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새로운 생활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이 소설집은 각 단편이 독자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다시 열 편을 합쳐놓으니까 또 다른 하나의 짜임새를 갖는다. 이것이 연작소설의 맛이고 멋"이라고 썼다.
문학평론가 김종해는 "작가는 생태환경 문학의 중요한 한 축인 농촌의 어메너티(생활 편의시설)를 화두로 내세웠다"며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서울 외곽 경계지대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삶과 그 생태환경적 의미를 탄탄한 문장력으로 그리고 있는 <마을>은, 이천 년대 우리 문학의 중요한 성과로 자리매김 될 것으로 믿는다"고 평했다.
작가 김종성은 1952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태백에서 자랐으며, 1986년 제1회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탄>(炭), <금지된 문>, <말 없는 놀이꾼들>, <연리지가 있는 풍경>이 있다. 2006년 소설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으로 제19회 경희문학상을 받았다. 지금 고려대 인문대학 교양교직과 교수를 맡고 있다.
작가 김종성 연작소설 <마을>
이종찬 SBS U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