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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산책] 뷔페와 갈라 공연

'에투알 발레 갈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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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던가, '뷔페'식 레스토랑을 처음 가봤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가지각색 동서양 요리들을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한 자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탕수육도 먹고 회도 먹고 갈비도 먹고 피자도, 스파게티도 먹을 수 있다니!

내가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도 얼마 전 신애가 처음 뷔페 식당에 갔을 때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산더미처럼 쌓인 각종 요리의 '향연'에 감격하던 신애. 못된 해리가 '딱 한 접시'만 먹을 수 있다고 속이자, 낙담하다가 한 접시에 '12층 식탑'을 쌓는다. (얘기가 옆길로 새지만, 나도 그런 '탑'을 쌓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샐러드 탑' 쌓기의 명수였다. 피자 레스토랑에서 샐러드를 주문하면 '딱 한 접시'만 샐러드 바에서 담아갈 수 있도록 한 시절을 기억하는가. 나는 온갖 '테크닉'을 동원해 그릇이 미어터지도록 샐러드를 층층이 담아, 여럿의 배를 채우곤 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신애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내게 '뷔페'는 정말 '환상적인' 곳이었다. 아주 특별한 날에나 가 볼 수 있는. 하지만 나는 점점 '뷔페'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나는 뷔페가 싫다. 그냥 고깃집에 가서 맛난 고기 한 가지 먹는 게 낫지' 하신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 요즘 돌잔치나 결혼식 피로연을 '뷔페'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고만고만한 음식들을 몇 가지 집어서 먹다 보면 특별히 맛있게 먹었다는 느낌 없이 어느새 배만 부른다.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에투알 발레 갈라' 공연을 보면서 '뷔페'를 생각했다. 나는 이 '에투알 발레 갈라'에 공연 전부터 기대가 무척 컸었다. 일단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이 라이브로 무용 음악을 연주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지영이 김선욱의 반주로 '빈사의 백조'를 공연한다는 데 먼저 꽂혔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한국에 돌아온 발레리노 김용걸이 참여하고(준비 과정에서 부상으로 출연이 취소돼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다), ABT 즉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서 활약 중인 유망주 서희가 ABT의 수석 무용수 호세 카레뇨와 함께 지리 킬리안 안무의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를 춤추는 등, 국내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무용수들과 작품들이 선보인다는 데에도 관심이 갔다.

과연 클래식 음악가들이 라이브 연주로 발레에 참여한 것은, 기대했던 대로 훌륭한 효과를 냈다. 김선욱과 김지영의 '빈사의 백조'는 공연 시간이 짧은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꿈결같이 아련한 김선욱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생명을 다해가는 백조의 가녀린 날갯짓을 표현한 김지영의 몸짓. 쉽게 보기 어려운 무대였다. 지리 킬리안의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를 비롯해, 라이브 연주가 이뤄진 다른 프로그램들도 느낌이 좋았다. 국내 초연작들이 소개된 것도, 갈라 공연의 특징을 살려서 출연진들이 모두 다시 나와 함께 춤추며 인사할 수 있도록 커튼콜이 구성된 것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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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공연에서는 갈라 공연의 '난점'도 그대로 드러났다. 다양한 작품들을 '맛보기'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짧은 작품들이 뚝뚝 끊어져 진행되다 보니 그 때마다 집중해서 관람하기가 쉽지 않았다. (각 순서마다 출연진과 작품을 소개하는 자막이 있었다면 좀 도움이 됐을 것이다.) 특히나 '지젤'과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등 전막 발레 중 한 장면을 떼어서 공연하는 프로그램은 그 장면의 정서가 잘 느껴지지 않아 감흥이 없었다. 녹음 반주로 진행된 작품은 음원의 질이 좋지 않아 귀에 거슬리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출연진간에 기량도 차이가 컸다. 해외에서 온 무용수라고 해서 다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몇몇 작품에서는 기교적으로 불안하거나 실수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김지영, 김현웅 등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국립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의 관록과 기량이 새삼 돋보였다.

발레 갈라 공연은 '뷔페'와 비슷하다. 웬만한 뷔페보다는 잘 하는 고깃집이 낫다. 웬만한 갈라보다는 제대로 된 전막 발레 한 편 보는 게 낫다. 언제였던가, 볼쇼이 발레단이 내한공연에서 전반부는 갈라를, 후반부는 '지젤'의 2막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갈라보다 지젤 2막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년간 여러 갈라 공연을 보면서 갈라에 물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도 다시 이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뷔페에 환장했던 것처럼, 나도 발레 갈라 공연을 무척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같은 고전 외에 신작을 보고 싶었고,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비교하면 국내 단체들도 신작을 많이 선보이고 있고, 클래식만 고집하던 데에서 벗어나 비교적 모던한 작품들도 공연하고 있다. 게다가 무용수들의 기량이 굉장히 향상돼서 해외 단체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다. 갈라 공연에 대한 목마름이 예전 같지 않으니, 갈라 공연 보는 재미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진짜 '최고급 뷔페'라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 발레 팬들이 '원정 관람'까지 불사하는 일본의 발레 갈라 공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몇몇 유명 무용수들 외에는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 드는 갈라 말고, 정말 현역 세계 최정상의 무용수들이 고루 참여해 '경연'을 펼치는 '짱짱한' 갈라 말이다.

이번 '에투알 발레 갈라'는 기존에 국내에서 열리던 갈라 공연과 비교해 새로운 시도를 보여줘 신선했고, 충분히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뷔페 식당의 비유를 사용하자면,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던 건 아니지만, 몇몇 맛있는 음식을 맛본 것으로 그저 그랬던 다른 음식에 대한 아쉬움을 상쇄했다고나 할까.

이제 최고급 뷔페가 아니라면 뷔페에 식상하기 시작한 관객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침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이 주축이 된 '더 발레' 갈라 공연 일정이 발표됐다. 여기서도 음악가의 라이브 연주를 선보인다고 한다. 이 갈라 공연은 '최고급 뷔페'가 될까, 그저 그런 평범한 '뷔페'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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