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가지만 잎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마음에 허전함만 남을 때가 있다.
소소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선 길이지만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 이 곳까지 왔다.
옛 서울 문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북동.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로 문학에서 친근한 지명이 되었지만 시가 발표됐던 1960년대 이전부터 이미 많은 문인들이 살아왔던 곳.
일제 강점기 시대에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받던 소설가 이태준 선생의 집에 가는 길이다.
6.25전쟁 직후 월북했기에 1988년, 해금조치가 내려진 후에야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서재면서 작업 공간이었다는 누마루.
그도 이렇게 정원을 바라보고 작품을 썼을까?
이태준 선생의 집으로 알려져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자 10여 년 전, 찻집으로 개방되었다.
작가가 글을 쓴 곳에서 몇 십 년 후, 독자가 그 작품을 읽는 기분, 마치 영화 속의 시간 여행 같다.
알고 지낸 사람의 집을 방문한 느낌.
이태준 선생이 글을 쓰고 마당을 가꾸며 가족들과 살았던 이 집에서 어떤 느낌과 생각으로 작품을 써내려갔을지 짐작해 본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님의 침묵'을 쓴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에 거처했던 심우장이 있다.
승려였지만 아름다운 시어로 유명한 시인 한용운.
소박함과 검소함이야 짐작했지만 이렇게 좁고 높은 골목길 위에 집이 있을 줄이야.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와 거처 없이 지내는 선생을 위해 지인들이 마련해준 이곳 심우장, 잃어버린 나를 찾자는 뜻이라는데 나도 이곳에서 나를 찾아볼까?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된다고 총독부를 등지고 동북향으로 지은 집.
선생의 입적 후 이곳에 기거하던 외동딸은 인근에 일본대사관저가 들어서자 보기 싫다며 심우장을 기증하고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부녀지간이다.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한용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셨다면 무슨 말을 하셨을까?
도심화 되었지만 여전히 문학과 정취가 있는 한적한 성북동.
옛 작품을 더듬어 문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에 허전함을 두고 문인들의 이야기를 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