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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토야마호 출범…54년 만의 정권교체

[2009 국제 결산 ②] 하토야마 정치실험 도마 위에…지지율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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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는 지난 11일 '올해의 한자'로 '신(新)'자를 선정했다.

지난 8월 30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이 과반수를 훌쩍 넘는 308석(총 의석 480석)을 획득하면서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는 '혁명적인 사건'을 반영해서다.

이처럼 2009년은 '정권교체의 해'로 일본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1955년 보수연합으로 출범해 일본 정치를 줄곧 지배해 온 자민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극도에 달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자민당은 그동안 집권 여당의 '책임'을 내세우면서 경제 재건과 도약을 약속했지만 54년간의 자민당 집권에서 남은 것은 빈부격차 확대,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확대, 비정규직 대폭 증가 등 여러 가지 병폐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냉전체제이던 1955년 출범한 자민당은 반공과 경제성장을 표방하면서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관료에 대한 의존이 지나치게 심화됐고 각종 정책이 중앙 중심, 그리고 효율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양산했다.

자민당은 2005년 총선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비효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우정(郵政) 분야 민영화 등 각종 개혁조치를 내걸면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오히려 결과적으로 격차 확대로 인한 서민들의 상실감과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총리를 맡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가 취임 1년 만에 극도의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다 중도 퇴진한 것도 자민당 정권이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하반기 일본 경제를 강타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는 다소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제를 다시 급속하게 후퇴시키면서 자민당에 결정타를 날렸다. 또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등 변화 바람이 분 것도 일본의 정권교체에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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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야당이던 민주당이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내걸고 적극적인 선거 운동에 나선 것도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는 2006년 민주당의 대표직을 맡았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이 최고 공신이었다. 그는 종전까지 민주당이 당 지도부의 지원유세 등 이른바 '공중전'에 치중했던 것에서 벗어나 각 후보에 대해 유권자와의 대면접촉을 대폭 강화하도록 했다.

또 자민당의 중진들의 지역구에 신인 여성 후보를 포진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의 변화 심리를 자극하면서 선거전을 일찌감치 민주당 중심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8·30 총선에서 거함 자민당을 격침시킨 민주당은 양원제라는 의회 제도에 따라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하겠다면서 사민당과 국민신당을 포함하는 연립 정권을 탄생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체제는 총선 2주가 조금 지난 9월 16일 출범했다.

특히 하토야마 정권 출범은 일본 정치사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의 정치와 각종 제도를 논의할 경우엔 일본이 침략전쟁에서 패한 뒤 새롭게 출발하게 되는 2차대전을 주요 분기점으로 삼는다.

하토야마 정권은 특히 2차대전 이후 현대사에서 선거를 통해 여당이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면서 이뤄진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2차대전 이후인 1993년에도 자민당이 총선에서 제1당은 유지했지만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는 바람에 자민당과 공산당을 제외한 8개 정파가 연합해 정권을 획득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비자민·비공산 연립정권은 내부 알력 등을 거치면서 불과 10개월 만에 자민당과 사회당 등의 연립정권에 권력을 내줘야했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출범한 하토야마 정권은 출범 3개월여를 맞아 상당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7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출발했지만 경기 침체와 하토야마 총리의 위장 헌금 문제, 그리고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싼 하토야마 총리의 오락가락하는 행보와 미국 측과의 충돌이 악재였다.

연립여당 의원들을 각료와 부대신 등의 자리에 앉히고 관료들의 정책 결정을 배제하는 '정치 주도 국정 운영'이라는 새로운 정치 실험을 했지만 국정 운영 경험이 없는 대신들은 하토야마 총리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데 급급했고 연립정권에 참여한 소수정당인 사민당과 국민신당은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했다.

이는 하토야마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도 무관치 않다. 오자와 간사장이 대표직을 맡던 당시 간사장으로 그를 보좌하던 하토야마 총리는 오자와 간사장이 정치자금 의혹으로 대표직을 사퇴한 뒤 치러진 대표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러나 그가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는 오자와 간사장의 지원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또 이번 총선에서도 오자와 간사장이 공천권을 행사해 150명이 넘는 의원들을 거느리게 되면서 민주당의 실세로 부상, 하토야마 총리가 설 땅은 매우 좁아졌다.

오자와 간사장이 각종 현안에 대해 비개입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신중한 성격의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적인 결단의 시기를 번번이 놓치고 있다.

후텐마 비행장 문제도 취임 초반에는 "미국과의 약속도 중요하다"며 외교의 연속성을 강조했지만 사민당의 반발과 "연립정권 유지가 중요하다"는 오자와 간사장의 한마디에 미·일 간 합의 번복이란 악수를 택했다.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사민당과 국민신당의 '몽니'에 끌려다니기만 했다.

또 자신의 정치자금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해명하지 못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그는 취임 초기 "검찰의 조사에 맡기겠다"며 자발적으로 설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 및 언론 보도를 통해 새로운 의혹이 속속 제기되자 뒤늦게 해명에 나서면서 이미지만 손상시켰다.

이런 탓에 최근 NHK의 여론조사에서는 취임 당시 70%를 넘어섰던 그의 지지도는 56%로 급락했다. 자민당 정권인 그의 전임자 3명은 모두 지지율 급락으로 취임 1년 만에 낙마했다. 하토야마 총리 역시 내정과 외교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일본 정치사에서 4대 연속 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갖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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