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퇴임 후 정착지였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주민들은 길고도 슬픈 1년을 보냈다.
지난해 12월 노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 씨가 '세종증권 비리'로,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 로비를 벌인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로 각각 구속되면서 봉하마을의 긴 1년이 시작됐다.
◇'칩거'로 시작한 2009년 = 노 전 대통령은 형 건평 씨가 구속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방문객과의 만남을 끝으로 사실상의 '칩거'에 들어갔다.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동생의 도리도 있기 때문에 국민에게 사과하기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이후 사저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새해 첫날에도 노 전 대통령은 온종일 사저에 머물렀고 이 같은 칩거는 설인 1월 26일과 귀향 1년 기념 마을잔치가 열린 2월 25일도 예외 없이 계속됐다.
이 때문에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귀향한 전직 대통령을 보려고 봉하마을을 찾던 방문객이 줄어들면서 마을 전체가 한동안 썰렁한 분위기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 1년을 넘기면서 봉하마을에 다시 봄이 찾아왔지만 '마음의 겨울'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돈 받았다" 사과문에 봉하마을 '침통' = 칩거를 이어가던 노 전 대통령이 4월 7일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봉하마을은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자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사실을 밝히면서 후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봉하마을로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노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의식해 사저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 채 장고를 거듭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러다 권 여사와 아들 건호 씨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한 지 24일 만에 검찰에 소환됐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로 검찰에 소환되는 노 전 대통령을 보려고 300여명의 취재진을 비롯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마을주민 등 1천여명이 시골의 작은 농촌인 봉하마을을 뜨겁게 달궜다.
◇투신자살에 망연자실 = 검찰에 소환됐다가 귀가하던 노 전 대통령을 침통하게 바라보던 봉하마을 주민들은 20여일 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평소 좋아하던 봉화산 자락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해 서거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이후 엿새 동안 분향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는 100만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밤낮없이 찾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추모사업과 친환경 농사로 '안정' =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비석은 고인의 일생을 아우르는 봉화산 사자바위 서쪽 기슭 아래에 세워졌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봉화산 사자바위, 퇴임 이후 생활했던 사저,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화포천, 자살한 부엉이 바위를 모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곳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겨진 너럭바위와 얇은 형태의 박석(薄石) 등으로 조성된 묘역은 국가보존묘지 1호로 지정됐다.
노 전 대통령측은 지난 9월 이 묘역을 관리할 재단 '아름다운 봉하'를 설립했으며 노 전 대통령 추모 기념사업의 상징적 장소로 가꾸고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생가가 고인의 음력 생일인 9월24일 일반에 개방돼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1월부터는 노 전 대통령 묘역의 헌화시설을 정비하고 묘역 전체에 박석을 깔고 축대를 쌓는 묘역 추가공사가 진행 중이다.
봉하마을 주민들은 친환경 농사를 진두지휘했던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10배가 많은 친환경 쌀을 생산했다.
이 쌀은 일반 쌀보다 비싼 값에 팔리고 있어 마을 주민들의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 봉하재단과 주민들이 이 쌀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생전에 서민과 가까이하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가는 역할도 하고 있다.
봉하마을 이병기 이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올 한해는 정신없이 보냈다. 갑작스럽게 마을의 큰 어른이 떠난 빈자리가 커 마음의 상처가 아물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친환경 농사를 잘 지어 잘사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봉하 재단의 김경수 사무국장은 "올해는 많은 사람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한 해였다"며 "이 어려운 시기를 용기와 인내를 갖고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말로 1년간의 복잡한 소회를 전했다.
(김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