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로운 물건이 쏟아지고 옛 것은 너무 쉽게 잊혀지는 것이 디지털 시대의 속도감.
동료와의 경쟁 속에 나 역시도 언젠가 잊혀지고 말거란 불안감이 들곤 한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여전히 옛 것이 주인공으로 대접 받는 곳이 있다.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오랜만에 홀로 외출에 나섰다.
옛 축제를 연상시키는 만국기.
그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곧 오늘의 목적지 풍물 시장에 도착한다.
가장 처음 날 반긴 건 이국적인 물건들.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확인할 겨를 없이 난 다른 것들에 푹 빠지게 됐다.
하나같이 모양은 다르지만 오래됐다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는 라디오들.
오래된 타자기, 투박한 옛 전화기, 숫자 버튼이 가득한 1960년대 계산기까지 난 옛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는 물건을 파는 가게에 놀러와 있다.
아이들 장난감 같은 턴테이블 발견!
45년이나 됐다는데 너무도 잘만 돌아간다.
[최태진/풍물시장 상인 : 이게 현 시가로 25만 원 합니다.]
역시 베테랑 장사꾼, 바로 사라는 말이 오간다.
하지만 일단 사진으로만 찜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고전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조명이 달려 있는 카메라들.
아 신기하다.
버튼 하나면 다 되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작동법조차 생소한 아날로그식 사진기들.
사진 찍는 맛이 다를 것만 같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그 거리 차는 얼마나 될까?
이런 고민도 잠깐 우아 정말 놀랐다.
한바탕 쏟아지는 늑대가죽 자랑, 이곳의 사람들 정말 재밌다.
놀라서 그런가?
갑자기 출출해졌다.
시장에서 최고 먹거리는 단연 국수!
보기에도 푸짐하고 따뜻한 국물이 정말 일품이다.
여기서도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가판대에 진열된 동전들.
기념주화들과 각국의 동전들이 있지만 이곳의 주 종목은 한, 중, 일 옛 동전들이다.
게다가 북한 돈까지 있었다.
여기서 가장 비싼 동전은 광무 11년, 1907년 발행된 은화.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가치는 10만 원! 세월에 그 가치가 100배 이상 뛰었다.
그리고 2층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벽면 한 쪽을 꽉 채우고 있는 LP판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명곡이란 타이틀을 넘어 클래식 반열에 오른 비틀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찾을 수 있다.
[임창수/풍물시장 상인 : 한장에 5천원씩 받고 있습니다. 아가씨가 이쁘니까 특별히 틀어드리겠습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LP음색.
내가 모르던 시절의 향수까지 떠오르게 한다.
사장님의 비장품들은 옛 가요들.
헌데 내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진짜 귀한 것만 남겨지게 되는 것일까?
시간이 가치를 만드는 하나의 척도라면 몇 년 후 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설마 이것도 파는 것일까?
누군가의 졸업앨범이며 옛날 교과서, 처음부터 끝까지 빼곡히 채워 쓴 공책까지 정말 이곳엔 없는 것이 없다.
옛 물건을 찾아 온 풍물 시장.
정작 내가 이곳에서 만난 건 옛 것을 모으고 보관하고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내가 배운 건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젠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이곳에서 시간을 떠올리려 구입한 행운의 동전!
풍물 시장의 추억을 여기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