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윤원중.군의문사위)가 7일 공개한 진상 규명 사례 가운데는 과거 군 내무반에서 자행됐던 인권유린 사례도 담겨 있다.
◇변사→타살로 규명
1979년 동해안경비사령부에서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육군 박모 이병의 사인이 변사(뜻밖의 사고로 죽음)에서 타살로 규명됐다.
당시 군은 사고 당일 새벽 1시30분에 위병소에 나타난 박 이병에 대해 A하사가 관등성명을 대라고 했으나 응하지 않자 위협사격을 가해 사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박 이병과 A 하사가 초소 앞에서 승강이하던 중 평소 박 이병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던 A하사가 고의로 총기를 발사해 총상을 입혔다.
A하사는 박 이병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고 내무반에 3시간 이상 방치해 과다출혈로 숨졌다. 사고 현장과 군병원은 1시간 거리에 있었고 민간 병원은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박 이병을 방치한 것이 사망 원인이었다고 군의문사위는 결론내렸다.
◇단순 자살→군복무와 연관된 사망 규명
1986년 해병 전차부대에서 근무중 사망한 서모 이병은 K-A1 기관단총으로 자신의 머리에 격발해 사망했고, 군은 이를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
하지만 군의문사위 조사결과, 서 이병은 심한 요통으로 군 복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의병전역 등 거듭된 구조요청을 했지만 적절한 치료나 보호조치를 못 받았고 오히려 선임병들로부터 꾀병이라며 구타와 인격적 모욕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의문사위는 서 이병이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넘어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태에서 남은 군생활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목숨을 끊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1982년 육군 김모 일병 역시 경계 근무중 자신의 총기로 자살했지만, 군의문사위는 김 일병이 영어 능통자라는 이유로 해당 부대에 파견된 것이 선임병들의 시기와 오해를 샀고 이로 인해 지속적인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김 일병은 일직사관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자 오히려 해당 선임병으로부터 협박을 받았고, 결국 "죽고싶다"는 말과 함께 자살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부대 화장실에서 목을 매 사망한 육군 이모 이병은 점호 후 매일 같이 선임병들에게 주먹과 군홧발로 구타를 당했고, 심지어 오물까지 먹는 등 비인간적인 행위를 강요당한 것으로 군의문사 조사결과 드러났다.
군의문사위는 이 이병이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최종 결론내렸다.
◇변사→사고사로 규명
1959년 육군 모사단에서 근무한 김모 이병은 부대에서 단순 변사처리됐으나 군의문사위는 유족들의 사인 규명 진정을 접수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김 이병은 사단 체육대회의 봉두전경기에 연대 대표선수로 참가했다. 봉두전경기는 2개로 팀을 나누어 높이 3m, 직경 30cm 나무기둥 위에 꽂힌 깃발을 먼저 뽑는 팀이 이기는 경기를 말한다.
김 이병은 경기 도중 상대편 선수에게 가슴과 복부를 가격당해 장파열로 부상해 연대 의무대로 후송됐으나 피를 토했다. 제2야전병원으로 긴급 후송했으나 병원 도착 전 구급차 내에서 사망했다.
군의문사위는 체육대회 행사 중 사망했기 때문에 전.공사상 분류기준에 해당하므로 국방부장관에게 고인의 사망구분 재심을 요구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