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탁 로비 등 각종 의혹의 핵심 인물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출국 8개월여 만에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잇단 의혹 제기 속에서도 언론은 물론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은둔하다시피 해오던 그가 작심한 듯 의혹을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뉴욕주립대 공공행정.정책학과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뉴욕주 올버니에 체류 중인 한 전 청장은 25일(현지시간) 뉴욕주재 특파원들과 만나 자신에게 쏟아지는 각종 의혹을 해명하고 부인했다.
말할 시기가 아니라며 답변을 피한 부분도 있고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설명도 곁들였지만, 한 전 청장은 의혹이 제기됐던 당시의 상황을 곁들여가면서 비교적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른바 '경주골프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모임의 성격과 정황까지 상세히 설명하며 "결과적으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또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의혹에 관해서도 해외 국세청과의 협력을 통해 기업들의 해외 비자금을 조사하던 중 실무선에서 보고가 올라온 사안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전 청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그동안 기자들이 찾아가도 만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다"며 대응을 자제하던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그가 모종의 심경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날 '시비는 무상실하여 구경 총성공이라(是非 無相實 究境 摠成空.끝까지 시비를 가려봐야 결국 남는 것은 빈 껍데기뿐)'는 명심보감의 구절을 인용해가며 심경을 토로했고, 문답 형식의 언론 발표문을 미리 준비했다가 기자들에게 나눠줘 사전에 많은 준비를 했음을 드러냈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과 관련, "대응하지 않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를 사실이라고 믿지 않겠느냐며 주변에서 워낙 걱정들을 하기에 일부 말할 부분은 말해야겠다는 판단으로 오늘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오늘 내가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오늘 이런 얘기를 해도 나에 대한 의혹이 진정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며 입을 닫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은 또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유학을 왔고 아직은 내가 나서지 않아도 진실이 거짓을 이길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귀국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들어가 해명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한 전 청장은 그동안 혼자서 외로운 객지생활을 해온 것을 감안하면 모습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뉴욕주립대 공공행정.정책학과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체류 중인 그는 한국의 사회적 갈등과 해결방안에 관한 책의 저술에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2년 정도 미국에서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면서 "사례조사를 위해 캐나다와 독일 등도 방문할 예정"이라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3평 남짓한 그의 연구실에는 책 몇 권과 노트북 컴퓨터와 프린터, 책상뿐이었고 그나마 연구실도 교환교수로 자리를 비운 교수의 방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한 전 청장은 그동안 마라톤을 하며 건강을 다져왔다고 한다. 연구실 한쪽 벽에는 하프 코스를 완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메달도 걸려 있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헤어지면서 "이런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다시 언론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버니<미국 뉴욕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