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7일 오전 9시께 인천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 안방에서 생활보호대상자 인모(6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인씨와 함께 살던 사회 선후배 관계의 주모(53)씨.
주씨는 인씨의 얼굴을 여러 차례 때리고 바닥에 넘어뜨려 뇌출혈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구속됐지만, 끈질기게 범행을 부인했다.
자신은 만취해 계단에서 구른 인씨를 붙잡아 주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인씨는 평소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었고 부검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도 0.15%나 됐기 때문에 스스로 넘어져 변을 당했다고 볼 여지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검찰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씨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이나 사건 당일 행적으로 볼 때 주씨가 집안에서 인씨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심증은 충분했지만, 물증이 없다 보니 무죄 판결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에 수사를 맡은 인천지검 손정현 검사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건을 재구성해 나갔다.
손 검사는 우선 인씨의 두개골 상처와 이마, 광대뼈, 눈썹 밑 등에 난 상처가 주씨의 주장대로 계단에서 굴러 생긴 것인지를 살피기 위해 법의학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이정빈 서울대 교수에게 자문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이 쏠린 사건도 아닌 상황에서 바쁜 이 교수와 약속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손 검사는 휴일을 반납하고 이 교수의 집앞까지 찾아 갔고, 그 열의에 감복한 이 교수도 상처의 각도와 깊이, 형태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과학적인 증거와 함께 '누군가 흉기로 찌르고 주먹으로 때린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 았다.
다음으로 손 검사가 주목한 것은 인씨의 사망 시점이었다.
아파트 CCTV 분석 결과 주씨는 7월25일 오후 9시께 집에 들어갔다가 26일 오후 7시께 짐을 꾸려 급히 이사했다.
자신은 인씨가 자고 있을 때 나왔으며, 인씨는 그 뒤에 사망했다는 것이 주 씨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시신 발견 당시 인씨의 직장(直腸)온도는 27.1℃로 실내온도와 똑같았다.
사망 후 체온이 떨어지는 속도를 따져보면 인씨가 숨진 지 17~18시간 이상 지났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인씨는 주씨가 집에 있을 때 사망한 셈이었다.
손 검사는 이밖에도 제3자의 침입 가능성이나 주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주변인 진술 등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구속 기간까지 연장해가며 20일 동안 밤낮없이 이 사건에 매달린 끝에 주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조목조목 들이댔고, '오리발'을 내밀 던 주씨로부터 결국 자백을 이끌어냈다.
이에 인천지법 형사합의13부(함상훈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열린 재판에서 주 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손 검사가 구형한 징역 8년을 그대로 선고했다.
검사의 구형 량이 그대로 선고되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
자칫하면 묻혀버릴 뻔했던 진실을 '발로 뛰는 수사'로 밝혀낸 손 검사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손 검사는 그러나 '공명심에 한 일은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했다.
그러다가 25일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했다.
"사망자가 탄원해줄 유족조차 없는 불쌍한 사람이라 더더욱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쉽지는 않은 과정이었지만 뿌듯합니다"
(인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