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CNN 방송국 방문 중, 백발 노장 앵커인 짐 클랜지씨는 저에게 가장 큰 인상을 주었다. 185cm가 넘는 큰 키에 체격은 씨름선수 같지만 흰머리와 구수한 목소리는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누구나 쉽게 다가가서 친해질 수 있는 기자 또는 앵커. 짐 클랜지씨를 만났다.
주요 뉴스 앵커를 맡고 있는 '백발 노장' 짐 클랜지씨를 만나다
클랜지 씨는 지난 35년간 기자 생활을 해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가운데 25년은 현장에서 직접 뛰며 취재했고, 10년 동안은 앵커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올해 60살인 그는 그의 인생 절반 이상을 기자 생활에 몸 바친 것이다.
그럴만도 한것이, 그를 모르면 CNN 시청자가 아니라는 말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 루완다 대량학살, 베를린 장벽붕괴 등 세계적인 뉴스가 터질때마다 그가 있었다. 올해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을 맞아 그는 또 베를린을 방문했다.
갈색의 롱코트를 입고 베를린 장벽 앞에서 리포트하는 모습을 CNN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정말 "서에서 번쩍, 동에서 번쩍‘이란 표현을 그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기자 선배이기도 한 클랜지씨는 바쁜 방송일정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자신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 하고 싶다고 그의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자, 일정까지 수정하면서 미팅 시간을 잡아주었다.
클랜지 씨는 매일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새벽 4시만 되면 눈을 뜬다고 했다.
적어도 8시간 잠을 자야 전쟁터(방송국)에서 적과 싸울 수 있다(경쟁사와의 경쟁)고 말했다. 기자에게는 매우 많은 시간이라고 생각됐지만 몸을 최고의 상태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일어나자 마자 하는 일은 무엇보다 신문을 읽는 것이다. 클랜지 씨가 구독하는 신문은 모두 12가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꼼꼼히 읽는다고 말했다. 시대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독서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독서를 많이 해서 그런지, 아는 것도 많았고 기억력도 뛰어났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던 대형 사건, 사고들의 발생 연도와 정확한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는 나의 평생직업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직업에 대해 프라이드(pride)를 갖고 있을 것이다. 클랜지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한다고 말했했다. 기자 생활 35년 이상 해왔으면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지만 그는 달랐다. "뉴스는 무엇인가?"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뉴스는 뉴스다"라고 말했다. 오늘 뉴스가 내일로 넘어갈 수 없고 일주일전 뉴스를 오늘 방송할 수 없다. 오늘 뉴스는 꼭 오늘 보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뉴스가 내일로 넘어가면 그 뉴스의 가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쉬운 직업이 아니다.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취재 현장을 전쟁터라고까지 표현했다. 이 전쟁터에서 승리하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란 무엇일까. 준비란 일이다. 기자는 일을 많이 해야만 하는 직업이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클랜지 씨는 60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아직까지 새벽에 나오고 일을 한다. 그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업무 시간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일이란 방송도 될 수 있고 공부도 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일이란 '방송 및 취재'를 뜻한다.
하루가 즐겁다
짐 클랜지씨는 항상 즐거운 표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하루 하루가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을 하기 때문에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Your Word Today'라를 프로그램의 앵커를 하고 있다. 그는 '최고의 앵커'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이 방송은 자연스럽게 진행했다. 방송만 끝나면 PD 또는 FD들의 진행 실수에 대해 냉정하게 비판하고 반성하도록 요구했다. 방송에서는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그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부인에게 가장 미안하다
그는 지금 부인과 지난 1981년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결혼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1년 중 열달을 해외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는 약간의 미소로 말을 이었다. 1995년 어느날이었다. 장기간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아프리카 루완다로 출장을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 소식을 부인에게 전달하자,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실망하는 부인에게 여행 경비까지 부탁을 해야 했다며 그 시절이 아직도 기억이 남고 부인에게 아직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실 어느 남편이라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일 때문이라고 하지만 집을 비우게 되면 누구보다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인과 아이들에게 더욱 잘해주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그의 얼굴만 보아도 그가 따듯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남편, 아버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