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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③ 순리를 역행하면 자신이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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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수목원, 혹은 숲으로 더 잘 알려진 세조의 왕릉 광릉. 처음 광릉이 조성될 즈음, 이곳은 몇 만평의 광대한 영역을 자랑했다. 떨어진 낙엽 하나 함부로 주워갈 수 없는 '금역'이었다.

하지만 광릉이 생긴 이후부터 왕릉의 구조와 위치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세조릉의 풍수관련 변화들을 살펴보면, 의미심장한 부분이 많다. 광릉은 여타의 왕릉, 특히 개국시조 이성계의 건원릉보다 상위 자리에 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위치라면 발복이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풍수 발복을 위해 발복을 더디게 한다는 병풍석도 제거했다.

위치면에서도 안산이 정면으로 향해있다. 세조 왕릉처럼 안산이 선명히 다가오면, 발복이 빠르다는 근거를 내세운다. 이토록 발복을 위해 애를 썼지만, 이후 예종이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 온 점을 비추어볼 때 그 효과는 의심스럽다.

현재 지하철 2호선 근처에 위치한 선릉(선정릉) 역시 마찬가지. 문정황후의 아집으로 선정된 위치다. 하지만 이는, 알고 보니 흉지 중 흉지였다. 이곳은 해마다 물난리가 나는 곳이었다. 당초 시부모 무덤 옆에다가 남편 무덤을 천릉 시켜 선산을 만들고, 여기에 며느리인 자신의 무덤도 쓰려 했던 문정황후는 본인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본인은 태릉에 잠들게 됐다.

당파 싸움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경우도 있다. 효종의 왕릉이 이장하게 된 사례다.윤선도와 송시열 일파가 나뉘어 왕릉 터를 추천했지만, 결국 송시열이 추천한 곳으로 정해졌다. 이때 윤선도는 주변인들에게 "10년이 채 가기도 전에 효종릉에 큰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1년 후 왕릉에 틈이 생긴 곳이 27곳이나 생겼다. 결국 효종릉 역시 천릉을 하게 된다.

(SBS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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