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양측 통상장관이 15일 가서명하면서 협정문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됐다.
외교통상부가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관세의 경우 EU 측은 공산품 전 품목에 대해 5년 내 관세를 철폐키로 하고, 이중 99%는 3년 내에 철폐하기로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3년 내 관세철폐 품목을 96%로 하고 일부 민감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을 7년으로 설정해 전반적으로 EU 측이 우리보다 조기에 관세를 철폐하도록 했다. 쌀 등 일부 농산물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협상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관세환급 문제는 현행 제도를 인정하되, 협정 발효 5년 후부터 역외산 원자재 조달방식의 중대한 변화가 있으면 해당 품목의 환급 관세율 상한(5%)을 설정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절충했다.
또 자동차 원산지 기준의 경우 역외산 부품사용 비율 상한을 45%로 하는 선에서 합의됐고 영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시청각물은 일정기준을 충족하면 공동제작물로 인정하기로 했다.
◇ 공산품 관세 5~7년내 철폐
한국과 EU 양측은 공산품(임산물 포함) 전 품목에 대해 5~7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EU 측은 공산품 전 품목에 대해 5년 내 관세를 철폐하고 이중 99%는 3년 안에 없애기로 했다. 3년 내 관세철폐 품목 비율은 한. 미 FTA(91.4%)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3년 내 관세철폐 품목이 96%에 달하며 일부 민감품목은 관세철폐 기간을 7년으로 설정했다. EU가 우리보다 다소 조기에 관세를 철폐하게 된다.
양측 모두 자동차부품, 냉장고 등의 관세는 즉시 없애기로 했고 1천500cc 초과 승용차는 3년 안에, 1천500cc 이하 승용차는 5년 안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하이브리드카는 소형차와 마찬가지로 5년 안에 관세가 철폐된다.
이 외에도 우리 측은 컬러TV, 선박, 타이어 등을, EU 측은 에어컨, 라디오, 진공청소기 등의 관세를 FTA 발효와 동시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 쌀 관세철폐 대상서 제외
농산물의 경우 민감품목은 양허대상에서 빼거나 현행관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쌀은 아예 양허대상에서 제외됐고 감귤(온주밀감), 고추, 마늘, 양파, 인삼 등은 현행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돼지고기는 부위별 민감성을 고려해 냉동 삼겹살(관세율 25%)의 경우 관세철폐 기간이 한.미 FTA(2014년 철폐) 때보다 장기인 10년 내로 합의됐다. 냉장 삼겹살은 10년 내로 관세철폐기간을 정하되, 세이프가드 발동 대상에 포함했다.
포도주는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즉시 철폐에 양측이 합의했다.
수산물은 대(對) EU 수출에서 100만달러 이상 품목 중 냉동넙치(5년)를 제외한 대구, 새우, 오징어, 문어 등 전 품목이 즉시 또는 3년 내 완전 자유화된다.
EU 측 관심도가 높은 냉동 고등어(12년), 조제 골뱅이(5년)는 한.미 FTA 내용과 비슷한 수준에서 관세철폐 기간이 정해졌다.
◇ 관세환급 유지...자동차 역외산 45% 허용
막바지까지 쟁점이 됐던 관세환급 문제는 지금의 제도를 유지하되, 협정이 발효되고 5년 후부터 역외산 원자재 조달방식이 중대한 변화가 있으면 상한율이 5%로 제한된다.
협정 발효 후 5년부터 우리 측의 부품 수입 증가율이 EU에 대한 완제품 수출 증가율보다 훨씬 크면 환급해주는 관세를 기존의 8%에서 5%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U 측은 협상 마지막까지 역외산 원자재에 대해 관세환급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우리 측은 다른 FTA에서도 허용됐다는 점을 들어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막판 쟁점이었던 자동차 원산지 기준의 경우도 한.미 FTA와 유사하게 역외산 허용치를 45%로 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고 자동차 부품은 세번변경기준 또는 역외산 허용치 50%로 합의됐다.
개성공단 제품은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양축이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협정 발효 1년 후 구성해 역외가공지역(OPZ)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결정하기로 했다.
EU 측이 끈질기게 요구한 원산지 표기 방식인 `메이드 인 EU(made in EU)'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 `포지티브 방식' 개방..독소조항 완화
서비스 및 투자 분야는 개방 대상을 일일이 열거하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을 채택했다.
EU 27개 회원국의 사정이 각각 달라 모두 개방하고 유보 사항을 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은 유보의 내용이 아주 복잡해질 수 있다는 게 외교부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한.미 FTA 당시 독소조항 논란을 일으켰던 `역진방지(래칫)' 조항은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래칫은 한번 규제를 완화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미국과는 네거티브 방식의 협상이 진행돼 개방키로 한 분야에서 역진방지 조항이 필요했지만 EU와는 방식이 달라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또 한.미 FTA 체결 당시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불렸던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ISD) 등 투자보호 관련 사항도 한.EU FTA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한.EU FTA 발효 후 서명되는 FTA에 대해서는 미래 최혜국 대우(MFN)를 적용하기로 했다.
미래 최혜국 대우란 양측이 다른 국가와 서비스 분야에서 추가로 FTA를 체결해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하면 자동으로 협상 상대방에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한.미 FTA 협상 때도 미래 최혜국 대우를 서로 인정키로 했는데 이번 한.EU FTA 협상 때 한.미 FTA보다 더 많은 분야의 개방이 이뤄져 미국이 혜택을 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서비스 분야에서 한.미 FTA에 비해 환경, 위성통신, 법률시장 등 3개 조항에서 추가로 진전된 내용(코러스(KORUS)+3)이 있었다.
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가진 EU는 협상 내내 미국에 내준 것보다 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는 소위 `코러스(KORUS) 플러스'를 요구했고, 우리 측은 결국 일부를 더 내주게 됐다.
그 3가지는 ▲하수도 처리사업 입찰에서 EU 기업에 대한 비(非)차별 조항 ▲기간통신사업자를 통하지 않고 방송사가 위성전용회선을 직접 계약할 수 있는 조항 ▲법률자문서비스에서 외국법 자문사(외국법 변호사) 뒤에 자국의 변호사 명칭을 쓰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 영화.애니메이션 공동제작물 인정
문화 분야에서는 시청각 분야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문화협력의정서를 통해 시청각물 공동제작, 공연예술, 출판물, 문화재보호 등 문화 분야 전반에서 양측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영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시청각물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양국의 공동제작물로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애니메이션은 EU 회원국 3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양측 기여도가 각각 35% 이상인 경우, 영화 등 기타 시청각물은 EU 회원국 2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양측 기여도가 각각 30% 이상이면 양국의 공동제작물로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서비스 분야는 기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공교육, 의료 및 사회 서비스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는 개방하지 않는다. 다만, 한.미 FTA처럼 대학교 및 성인교육 분야는 현행 법령 수준에서 개방한다.
또 전기.가스 등 외국인투자 제한업종은 현행 규제 수준을 유보하고 기간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 제한(49%)도 유지된다.
통신서비스는 한.미 FTA 개방 수준을 유지, 전신, 전화, 인터넷 접속 등 기간통신서비스가 적용 대상이며 통신서비스를 이용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IPTV 등 융합서비스는 제외됐다.
이 밖에도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들은 협정의 예외로 인정, 정부가 제공하는 지급보증, 손실보전 등의 특혜를 받을 수 있으며 신금융서비스는 아직 자기 나라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 엄격한 조건을 두고 허용하기로 했다.
법률, 회계, 세무 등 전문직과 부동산 사업, 육상 운송, 우편, 건설 등 대부분의 분야도 한.미 FTA와 유사한 수준으로 개방된다.
◇ 샴페인, 코냑 명칭 함부로 못 쓴다
우리나라와 EU는 지적재산권과 관련, 지리적 표시를 상호 보호하기로 했고 그 대상에 농산물 및 식품과 포도주.증류주 등이 포함됐다.
FTA로 타결로 지재권이 강조되면 `지리적 표시제'에 따라 `샴페인', `코냑' 등의 명칭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며 명품 `짝퉁' 단속과 처벌도 더욱 엄격해질 전망이다.
지리적 표시제 보호대상 품목은 한국의 경우 농식품 63개, 증류주 1개(진도홍주)이며 EU 측은 농식품 60개, 포도주 80개, 증류주 22개이다.
또 저작권 보호기간이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기존 50년에서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보호기간 연장시점은 협정문 발효 후 2년간 유예한다.
EU 측이 요청한 추급권 도입은 일단 배제했으나 협정 발효 후 2년 이내에 한국에서의 추급권 도입의 적절성과 실행 가능성을 협의하는 것으로 타협을 이뤘다.
추급권은 미술품이 재판매될 때 작가가 판매액의 일정 몫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 분쟁 3인패널 구성해 해결
우리나라와 EU 간에 FTA 문제로 분쟁이 발생할 때는 정부 간 협의를 통해 분쟁 해결을 시도하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분쟁해결심판제에 따라 중립적인 인사 3인으로 패널을 구성해 협의하게 된다.
절차가 당사국간 협의, 패널 설치, 패널 판정보고서 제출, 패널 판정 이행 등의 순서로 진행한다.
3인 패널은 한.미 FTA 협정에도 있는 것으로 공동추천의장과 양국이 지명한 각 1인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반덤핑, 상계관세 및 다자 세이프가드는 분쟁해결절차 대상에서 제외하고 별도의 중개절차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존의 분쟁해결 절차 보완 차원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절차를 두기 위한 것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중개인을 선임해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권고하게 된다.
◇ 광우병 쇠고기 들어오나
한.EU FTA에서 위생 및 검역조치 사항은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SPS) 협정의 권리와 의무를 따르도록 했다.
이에 따라 위생검역 조치 관련 분쟁은 한.EU FTA의 양자 간 분쟁해결절차가 아닌 WTO의 분쟁해결절차를 적용하게 된다.
특정 수입요건 부과의 근거가 되는 수출국의 동.식물 위생상황은 WTO SPS 협정 및 국제수역사무국(OIE) 등이 수립한 국제기준 또는 지침을 따라 수입국이 결정하게 했다.
OIE는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 대해서도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받았으면 뼈를 제거한 살코기는 월령 제한 없이 교역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광우병이 가장 많이 발생한 영국산 쇠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FTA 협정문 조항은 기존에 국제 교역에 적용되던 각종 기준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당 조항으로 말미암아 유럽산 쇠고기가 몰려들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FTA 협정문에 OIE 규정을 따른다는 내용이 있지만 동시에 각국의 독자적인 `위험평가 권한'을 규정한 WTO SPS 규정을 준수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WTO 회원국은 동식물을 수입할 때 검역주권인 위험평가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수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위험 상황 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도 SPS 규정에 있다.
◇ 농산물 세이프가드 발동 가능
한.EU 양측은 농산물의 수입을 긴급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도입에 합의했다.
농산물 세이프가드는 수입물량이 급격히 늘어 국내 농가에 피해를 줄 경우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이다.
EU 측은 협상 중반까지 농산물 세이프가드 도입에 반대했지만 태도를 바꿔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FTA에 따른 관세감축으로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면 최혜국대우(MFN) 관세율까지 관련 상품에 대한 특혜관세율을 인상할 수 있다.
양자 세이프가드는 관세철폐 후 10년까지 발동할 수 있다.
또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른 다자 세이프가드 발동 권한도 보유하되, 같은 상품에 대해 양자 세이프가드와 다자 세이프가드를 동시에 발동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반덤핑 또는 상계관세는 최소 관세부과 원칙을 적용, 덤핑마진 또는 보조금 마진이 국내산업 피해를 제거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을 경우 국내산업 피해를 제거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간 또는 양적인 측면에서의 제한 없는 보증으로 지급되는 보조금, 신뢰할만한 회생계획 및 상당한 자구 노력을 하지 않는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은 금지하도록 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