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현직 기자와 대학교수들이 모여 탐사보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토론 발제는 KBS 탐사보도팀 기자와 중앙대 이민규 교수가 맡았고, 현업 방송사 기자와 PD, 신문기자도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주제는 탐사보도와 방송보도의 미래였는데, 세미나에는 현직 언론인들보다 대학생들이 더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토론자의 한 명으로 참석한 제가 세미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발제를 맡은 KBS 탐사보도팀의 김태형 기자는 KBS 탐사보도팀 4년의 기록을 통해 방송 탐사보도의 가치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김 기자는 탐사를 뜻하는 영어 Investigation은 라틴어로 '발자국을 추적한다'는 말이 어원이라며, 탐사보도는 숨어있는 자료를 추적해 뉴스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방송사에서 유일하게 탐사보도팀을 운용하는 KBS는 지난 2005년 4월 국내 지상파 방송사 최초로 탐사보도팀을 출범시켰습니다. 기자 11명과 데스크 1명으로 구성된 탐사보도팀은 출입처와 기획뉴스의 부담 없이 탐사보도에만 전념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난 4년간 KBS 탐사보도팀은 한국기자상 3회, 방송대상 2회를 수상하는 등 각종 언론상을 휩쓸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 꾸준히 경종을 울려왔습니다.
탐사보도의 전제 조건
김태형 기자는 KBS 탐사보도팀이 그동안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를 몇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말하자면 탐사보도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KBS 탐사보도팀은 담당기자가 6개월이나 1년, 또는 그 이상을 걸려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하더군요. 감춰진 진실을 추적 취재하다보면 실제로 시간이 꽤 오리 걸리게 됩니다. 이와 함께 KBS 탐사보도팀은 취재 이후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도 조성했다고 합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으면 만들기 쉽고 찾기 쉬운 아이템만 찾게 되기 때문에 실패를 받아들이는 내부 원칙도 명확하게 세워놓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탐사보도팀의 인원이 6명으로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김 기자는 말했습니다. 자료조사원과 AD, NLE 편집요원은 각각 3명, 1명, 1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인력충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탐사보도를 제대로 해보고자하는 김 기자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정보공개청구 활용해야
마지막으로 김 기자는 지난 2005년 출범한 KBS 탐사보도팀이 제작 방송한 시사 다큐 프로그램 26개를 대상으로 엑셀 프로그램의 사용여부를 확인해봤더니, 경중이 있을 뿐 모든 다큐 프로그램에서 엑셀 프로그램을 활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다루는 일이 많은 탐사보도의 특성상 수많은 수치를 분석해야 하는데, 이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계산하다보면 숫자에 매몰돼 복잡한 분석을 할 수 없게 된다며 과학적인 계산과 통계를 위한 엑셀 프로그램 활용을 강조했습니다. 또 모든 프로그램에서 정보공개청구 제도가 이용됐다고 밝히고, 정보공개를 통해 자료를 얻기까지 불편하고 답답한 측면도 있지만,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좋은 탐사보도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독립적인 탐사보도 증가 추세
다음으로 발제를 맡은 중앙대 이민규 교수는 "최근 불어 닥친 경제위기와 정권교체, 그리고 언론 환경 변화로 탐사보도가 축소국면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미국의 경우에도 탐사보도팀을 해체하거나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기존 제도권 언론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탐사보도를 수행하는 비영리 독립 탐사보도 센터가 증가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비영리 탐사기관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부패(60%), 조직범죄(58%), 사회쟁점(58%), 정치(55%), 그리고 환경문제(48%)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더군요.
이 교수는 국내 탐사보도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제안으로 탐사보도를 수행하는 비영리 공익기관을 제안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탐사보도센터(The 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를 예로 들면서, 이 교수는 국내에도 탐사보도센터를 설립해 신문과 방송 등 언론사에 프로그램을 제작, 공급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파헤쳐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CPI의 경우, 지난 2년간 74건의 탐사보도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매일 웹(
) 방문자는 10만 명이 넘고, 개인 기부자는 1천7백명이 넘습니다. CPI에는 인턴과 연구자 14명을 비롯해 정규직원 34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1년 예산은 4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CPI 총재인 빌 부젠버그(Bill Buzenberg)는 "미국의 수많은 언론사들이 CPI가 제작한 탐사보도를 독점적으로 받으려고 경쟁하고 있으며, 자체 인터넷 사이트나 다양한 뉴미디어 기술을 이용해 공중과 커뮤니케이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이 교수는 전했습니다.
영화 '인사이더'의 실제 주인공인 로웰 버그만(Lowell Bergman)은 CBS를 떠난 뒤, UC 버클리 대학교 언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탐사보도 장학기금(Fellowship in Investigative Reporting)을 마련해 많은 학생들이 이 분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탐사보도를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IRE(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의 경우에도 대학과 공동으로 탐사보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론자유가 하루 아침에 주어진 게 아니듯, 탐사보도 역시 오랜 시련과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미국 시민들의 독립적 탐사기관인 CPI의 예를 보면 탐사보도의 미래는 어둡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론사들이 경제난을 이유로 제작비용을 감축하고 탐사보도를 위축시킨다면, 미국처럼 별도의 독립적인 탐사보도기관을 운영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느새 하루 하루 편린처럼 흩어진 사실만을 취재·보도하는 일에 매몰된 저에게 오늘 탐사보도 토론회는 탐사보도의 중요성과 미래를 되새기는 계기를 만들어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