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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취재기(3) 자장면 먹다 낙종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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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으로 취재기를 올리는데 벌써 한 달이 흘러갔군요.

발에 물집 잡히도록 취재처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는 얘기는, 제 게으름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어쨌든, 기억을 더듬어 취재현장 일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6월 26일, 오전 11시.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에서 3백미터 떨어진 주차장.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쌍용차 임직원 5천여명이 모여 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같이 망하는 점거 농성 해제하라!"

이유일, 박영태 공동관리인은 이자리에서 노조에 최후 통첩을 하게 됩니다.

우선 정리해고된 976명 가운데 450명에게 희망퇴직 기회 다시 부여하고, 분사와 영업직 전환을 통해 320명에게 일자리 제공, 회사가 회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200명 범위내에서 2012년까지 무급휴직과 재고용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제안에 대해 노조는 한 시간 뒤 기자회견으로 응답을 내놓았습니다.

[한상균/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지부장 : 이따위 협박과 당치도 않는 제안을 철회하라]

[정갑득/금속노조 위원장 : 도장공장의 인화성 물질에 불이 붙으면, 평택시 전체가 날아간다. 공권력 개입 가만 안 두겠다]

섬뜩한 '평택 불바다' 경고도 나왔지만, 주된 내용은 정리해고자 전원에 대한 순환 휴직 또는 무급 휴직을 부여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재미있는 일은 노조의 기자회견이 끝난 낮 1시쯤부터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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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홍보실 직원 "기자님들, 중국집 잡아놓았습니다. 점심 드시고 가시죠."

접대를 받는 다는 것 보다는 요기를 빨리 끝내고 서울에 돌아가 뉴스편집을 하기 위해 저와 영상취재기자, 오디오맨, 운전수 형님 4명으로 이뤄진 취재팀은 쌍용차 공장 정문에 위치한 'H 중국집'에 들어갔습니다. 미리 온 방송사, 신문사 기자들이 쌍용차에서 준비한 식권을 받고 요기를 하고 있더군요. 저희도 식권 한장씩을 받고, 자장면 한 그릇씩 먹기 시작했습니다.(이 중국집 자장면 꽤나 맛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2달 동안 주식으로 이 자장면을 먹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식사를 마칠 때 쯤 시간이 1시 반.

서울로 떠나는 길에 갑자기 육감이 작동해 쌍용차 홍보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차장님. 직원들 공장안으로 치고 들어갔다죠?"(취재 기법인데 불쑥 유도심문성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제기랄 X! 속았다!'

"몇 명 들어갔나요?"

"2천 명 진입중이에요"

저희 팀을 태운 차는 급하기 유턴을 틀었습니다.

마침 운좋게도(?) 차를 세운 곳(정문에서 오른쪽으로 5백미터쯤 떨어진 주차장)에서 쌍용차 직원들이 철조망을 뜯어내고 있었고, 공장 안을 지키고  흡사 공성전을 방불케 하는 주먹다짐과 쇠파이프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타사 기자들은 여전히 중국집에서 식사중이거나, 정문쪽 시민단체 기자회견을 커버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덕분에 생생한 화면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사회부 기자 경력 4년. '무조건 공장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노조원과 사측 직원들이 살벌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틈바귀를 뚫고 저와 설치환 영상취재기자는 공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측직원 3천여 명은 본관 옆 하적장과 주행시험장에 집결해 대열을 정비했습니다. 이 전날까지는 심각하게 얼굴 붉힐 이유가 별로 없었던 노조원과 사측 직원들. 쇠파이프를 쥐어들고 대열을 정비한 9백여 명의 노조원들도 처음엔 확성기를 통해 대화에 나서려 했습니다.

"돌아 가십시오. 사측의 공작에 여러분도 말려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졸지에 직장을 잃게 생긴 사측 직원들은 물러 서지 않고 미식축구마냥, 스크럼을 짜고 진격을 시작했습니다.

"비폭력! 비폭력!"

우리는 대규모 인원이 참가한 전쟁터는 말 할 것도 없고, 시위에서도 우발적인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폭력의 강도는 분노에 의해 증폭돼 더욱 잔인하고 무서워지죠.

제가 본 바로는 먼저 폭력을 휘두른 것은 흥분한 노조원이었습니다. 쇠파이프를 위협하는 듯 휘둘렀는데, 이를 맞은 40대 사측 간부는 마치 돌에 맞은 개구리 마냥 바닥에 큰 대자로 쓰러졌습니다.

사측직원들의 진격이 계속되고 수적 열세인 노조측은 똥물을 담은 펌프와 지게차로 맞섰습니다. 점점 카오스 상태로 빠지는 상황속에서도, 공장 밖에 천여명의 병력을 대기시킨 경찰은 경고방송만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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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진정사십시오. 여러분들은 심각한 폭력행위로 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온 경찰 헬기도 속수무책으로 방송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와중에서 저와 영상취재 기자는 고약한 악취의 똥물을 뒤집어쓰면서 취재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회사에 전화를 돌렸죠.

"선배! 저희 팀으로 역부족입니다. 지원 팀을 불러주세요!"

"선배! 헬기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장난이 아니에요."

회사 내부 사정상 두 요구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설치환 영상기자의 카메라 배터리가 달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설치환 기자 : 오디오맨! 배터리 가져와!]

위험한 '패싸움'이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2007년 영등포 영일시장 철거폭력 사건을 취재했던 경험이 여러모로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사측과 노조측 여기저기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수적 우세를 앞세운 사측직원들은 소화기를 난사하며 맞서던 노조원들을 '몸'으로 밀어붙여 드디어 본관을 탈환했습니다. 본관에는 공장 전체의 자동화 설비를 자동 조종하는 대형 컴퓨터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 컴퓨터가 멈출 경우 쌍용차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게 회사측 설명이었습니다.

"다행히 컴퓨터실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본관 탈환에 성공한 사측직원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녁 5시, 기사 송고를 앞둔 상태. 저와 설치환 기자는 거의 탈진한 상태였고, 드디어 사회부에서 최우철 기자, 김명구 카메라 기자가 지원군으로 도착했습니다.

사측은 승리의 팡파레를 울리는 듯, 지게차를 동원해 노조원들이 정문을 틀어막았던 컨테이너 박스를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 여기저기에서는 불협화음 같이 귀에 거슬리는 '오 필승 코리아!'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사측이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틀어놓은 일종의 '응원가'였죠.

사실, 여기까지 였다면 저도 사측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자장면 먹다가 낙종할뻔 했지만, 저희를 속이려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니까요. 또 육안으로 보기에도 사측이 맞는 경우가 노조원들이 맞는 경우 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녁6시쯤, 사측이 동원한 용역직원들이 본관 뒷편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한 숨돌리려 했더니 "악!" 하는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들렸습니다. 본관과 노조원 집결지인 도장공장간 거리는 100여미터. 이 공간에서 노조와 용역직원들 사이에 싸움이 붙은 것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무법지대를 연상케 하는 폭력이 난무했고, 공장 안에 5백 명의 병력을 진입시킨 경찰은 수수방관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퍽!" 뭔가가 제 머리를 스치고 발밑에 떨어졌습니다. 구두 1,2cm 앞에 떨어진 빛 나는 금속성 물체는 땅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습니다.

'X! 볼트잖아!' 지상 4층 도장공장 옥상에서 노조원들이 주먹만한 철제 볼트를 새총으로 쏘고 있었습니다.

"기자에요! 기자!" 손을 흔들어봤지만, 용역들과 기자들이 뒤섞인 상황에서 흥분한 노조원들은 새총을 난사했고, 연합뉴스 기자 한 명이 이 와중에 머리에 한 방 맞았습니다.(다행히 스치는 수준이어서 15바늘 꼬매는데 그쳤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마음속에서 노조측에 대해서도 억한 심정이 드는 순간이었죠.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욕이 안나온다면 거짓말이겠죠. 어지러운 상황에서 취재를 마무리한 저는 후배 최우철 기자의 기사 작성을 도와주고, 저도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또, 위험한 상황에서 같이 열정 어린 취재를 해준 설치환 영상취재 기자(저보다 선배 입니다.)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마치고 데스크와 통화를 마쳤을 때는 제 얼굴색은 벌써 흑빛이 돼 있었습니다. 당연히 한 밤 중 벌어질 지 모를 노조와 사측 사이의 충돌을 취재하기 위해 취재기자가 야근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혼자 고군분투한 저를 회사에 있는 다른 동료기자와 교체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루 고생 좀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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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제게 임무를 맡긴 것이겠죠. 솔직히 이 점에 있어서는 지금까지도 '쌍용차 사태의 처음과 끝은 나보다 깊게 취재한 사람은 없어'라는 자부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후배 기자, 영상취재 기자 모두 새로운 기자들로 교체됐고, 저만 덩그란히 새로 투입된 영상기자 후배와 남겨졌습니다.

후배 기자는 역시 설 씨. "민환아. 무조건 공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설민환 영상기자와 함께 사측 용역직원들과 노조원들이 계속 맞붙고 있는 공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날은 어두워졌고,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기듯, 노조원들은 불이 붙은 타이어를 정문쪽 용역들에게 굴려 던졌습니다. 여기 저기 '휙! 휙!' 새총소리가 난무했지만, 날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취재기자로서는 유일하게 공장 안에 머무르며 최대한 눈으로 보고 느끼려 노력했습니다. 마침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쌍용차 직원들의 헬멧을 주워들었습니다. 충돌은 한밤중에도 계속됐고, 저는 평생 처음으로 양복을 입은 채 아스팔트 바닥에서 그냥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솔직히 정신력 아니었으면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쓰러졌을 겁니다. 또, 회사에서 같이 야근을 하며 격려의 전화를 계속 해준 손석민 선배의 지도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잠든 시간도 잠시, 새벽 3시쯤부터 다시 격렬한 충돌이 있었고 저는 마치 혼이 달아난 좀비마냥 무거워진 몸을 끌며 취재를 마쳤습니다.

새벽 5시 반, 중계차 기사를 송고하고 터벅터벅 쌍용차 정문을 나섰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SBS 중계팀을 만나 6시, 6시 반, 7시  생방송으로 현장 상황을 전했습니다. 교체해주기로 한 취재기자의 도착이 교통체증으로 지연되자, 저는 그냥 현장을 떠났습니다.

'X! 될대로 되라지! 할만큼 했다! 사실 내 나와바리도 아닌데...' 왠걸, 그 후로도 '쌍용차 사태'는 마치 제 전문 분야인양 험한 취재는 도맡아해야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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