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나리君.
지난 토요일 도쿄 도심 미드타운과 신주쿠 타카시마야 백화점에 다녀왔습니다. 한국 남성복 패션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도쿄에 문을 연 '솔리드 옴므'라는 업체의 일본 진출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야스나리君이 더 잘 알겠지만 미드타운은 도쿄에서도 제일 번화하고 비싼 동네지요. 신주쿠 타카시마야 백화점도 일본의 패션을 리드하는 곳인데 두 곳에 한국 브랜드가 진출했다니 내심 가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가서 보니 미드타운은 15평,신주쿠 타카시마야는 30평 남짓했습니다. 규모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아르마니나 돌체 앤 가바나와 같은 유명한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남성복 정장 한 벌 가격이 10-13만엔 정도라고 합니다. 고급 브랜드 시장에서 이 정도 가격이면 비싼 것은 아니지만 싼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일본의 고급 남성복 시장이 세계 총매출액의 50%를 차지하는 큰 규모라는 것, 이 브랜드를 도쿄에 유치한 일본 패션업체 '옹 워드(ON WARD)'라는 기업이 연 매출 규모가 4조원이 넘고, '돌체 앤 가바나'를 비롯한 세계적으로 유명 패션 브랜드를 발굴 육성한 대단히 유명한 기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패션 브랜드가 도쿄에 처음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사의 제목을 '패션도 한류'라고 이미 달아 두었습니다. 드라마,영화,음악에 이어 이제 패션 분야까지 한국 업체가 일본 열도에 진출했다라고 기사를 쓸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보니 제 당초 구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패션도 한류라고 하기에는 그 브랜드의 성격이 꼭 한국적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브랜드는 이미 8년 전부터 패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파리에 진출했고 파리에서의 평판을 근거로 도쿄에 진출한 것이었습니다.
이 업체의 우영미 사장은 패션 분야에서는 더 이상 브랜드의 국적이 의미가 없다고 하더군요.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특히 창의력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브랜드의 일본 유치를 주도한 '옹 워드' 그룹의 오쿠다 이사의 말도 귀담아 들을만했습니다. 신예 디자이너를 발굴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키우는데 안목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오쿠다 씨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이 업체의 도쿄 유치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와 이 업체의 도쿄 유치가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쿠다 씨는 명확한 답을 피했습니다. 오쿠다 씨의 태도는 그것과 이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매장에 온 몇 명의 소비자들에게 상품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들어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그렇지만 품질이 마음에 들고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사고 싶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특히 유럽 디자이너들의 제품과는 달리 아시아인의 몸을 잘 이해하고 만든 것 같아 입기 편하다는 소비자도 있었습니다. 이 소비자는 이것을 '아시아性'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재미있는 말이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일요일인 다음날 회사에 나올 때까지 이 기사를 어떻게 쓸까 꽤 고민했습니다. '패션도 한류'라는 제목으로 쓴다면 가장 쉽겠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로 실상을 정확히 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면서 그 동안 제가 한류와 관련해 쓴 기사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기자들이 일본 속의 한류 현상을 전하면서 '한류,일본 열도를 점령하다'라는 식으로 기사를 쓴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어느 매체가 배용준,최지우씨의 일본 활동 소식 제목으로 '일본 열도 까무러치다'라고 쓴 것도 크게 보면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스나리군.
문화의 본질은 교류이자 공유입니다. 어느 한 쪽이 한 쪽을 지배하고 점령하고 침투하는 것이 아니고 우월한 입장에 있는 한 쪽이 열등한 상대방에게 선심쓰듯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류 현상도 일본 열도가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국이 일본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고 조금만 길게보면 일본의 것이 한국 속으로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비롯한 적지않은 사람들이 한류와 관련해서 '점령'이니 '상륙'이니 하는 군사적 용어를 남발해온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근현대 시기 일제의 한반도 침략에 대한 일종의 반격으로 한류 현상을 해석하려는 잠재의식이 제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숙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한류를 해석하는 경향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그 기사의 제목은 '패션도 한류'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 다른 제목으로는 리포트를 만들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다만 기사에서 이 업체의 도쿄 진출을 일본 업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해온 제 클로징은 뺐습니다. 방송에 나가지 않은 지 클로징 멘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소비자들의 최종 판단은 아직 미지숩니다. 다만 지금까지 나온 반응들을 보면 한국 브랜드의 일본 열도 상륙작전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서 급박하게 클로징을 하다보니 입에 익은 '상륙작전'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대신 클로징 멘트를 대신해 다음과 문장으로 기사를 마감했습니다.
"창의력만 있다면 패션 브랜드 시장에서 국정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한류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진 것이 일본 진출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한류의 원조 배용준 씨와 최지우 씨가 일본에 왔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도쿄돔에서 대규모 행사를 합니다. 5만여 명의 일본 팬들이 한 목소리로 두 사람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하는 것을 보니 일본 속의 한류가 정말 도저하게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SBS를 비롯해 한국 언론들이 두사람의 이번 일본行이 한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면서 적지않은 기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기자의 한 사람으로 '한류,일본 점령'이라는 류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흐름을 거스르기 힘들다면 기사 가운데 '점령'과 같은 군사적인 용어라도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