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신문에 영장기각 기사가 크게 실렸습니다.
내용인 즉슨, 지난 7월 미디어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채증(採證, 증거수집이라고 의미가 통할까요?)하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은 A씨에 대한 영장을 경찰이 2번이나 신청했는데 이를 법원이 기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신문은 이 사안에 대해 사설까지 동원해 "경찰의 채증 카메라는 중요한 증거확보 수단이고, 이를 빼앗은 행위는 증거인멸을 위한 악질적 공무집행 방해이자 국가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표현을 했더라고요.
시위 도중 경찰의 카메라 끈을 준비한 커터칼로 자르고 카메라를 빼앗은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위지요. 실제 현장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경찰에 입건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혐의입니다.
하지만 몇몇 신문에서 제기한 이런 사람을 왜 구속 안 시키냐는 문제는 다른 문제일 겁니다.
수사기관이 하는 일은 단순하게 말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반한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겠죠. (벌까지 주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엄연히 법원이 있으니까요)
경찰에서 우선 수사를 한 뒤 검찰에 넘기기도 하고 검찰이 직접 수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모아 기소하고 유죄냐, 무죄냐하는 법원의 판단을 구합니다.
구속이라는 것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해 버려 혐의 입증이 어려워 질 것을 대비해 이뤄지는 수사 행위입니다.
제가 직접 영장을 기각한 판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신문기사에 나온 판사의 기각 사유는 이러했습니다.
- "주거가 일정하고 직접 폭력을 가하지 않았으며 경찰은 채증요원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빼앗겼어도 공무수행에 문제가 없다"
- "손 씨가 범행을 시인했고 증거가 확보돼 있는데다 민주노총이 피해액을 법원에 공탁했다"
기사내용만 보아도 수사기관에서 증거가 확보돼 있고 본인도 범행을 시인한답니다. 그런데 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이 문제라고 하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수사를 위한 구속인 것이지, 구속을 위한 수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수사 관계자는 '법을 어길 경우 엄벌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전 인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영장이 발부되었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구속과 엄벌은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겁니까? 구속여부와 유무죄와는 관계가 없는 사항이죠.
만약 구속이 엄벌이라고 생각한다면 단순히 경찰과 검찰이 피의자 구속여부 때와 달리 적부심에서 피의자가 풀려났을 때에는 왜 영장이 기각된 것처럼 흥분하지 않는 지 궁금합니다.
국민정서상 구속이 되면 뭔가 벌을 받은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조직보다 정밀하게 조사하고 추상같이 칼을 휘둘러야 할 대한민국의 수사기관이 국민정서만을 고려해 수사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전달에다 가치판단까지 버무려 구속 왜 안 시키냐는 기사를 쓰는 언론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겠죠.
이런 취재파일을 쓰다보니 구속 영장이 청구되기도 전에 이미 마치 대형 범죄인인 양 기사를 크게 써대고(저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ㅠㅠ)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가 확정되어도 1단 정도의 조그만 기사로 처리하는 언론이 결국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편집자주] 보도국 사회2부의 박상진 기자는 2005년 신문기자로 시작해 2008년 SBS로 둥지를 옮겨 사건팀에서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꽁꽁 숨겨진 진실을 찾는 고된 작업에 묵묵히 몸을 던진다'는 박기자는 오랜 법조계 취재경력과 함께 지난해 말에는 용인 창고 화재 참사 당시, 대피를 알리는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해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