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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청년 야스나리君에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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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호 특파원의 도쿄 다이어리

야스나리君.

2년 전 남태평양의 <투발루>라고 하는 작은 섬에서 쯔나시마라고 하는 일본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26살이었으니까 이제는 28살이 되었겠습니다.

지난 2007년 10월 저는 지구 온난화 문제의 상징이 된 투발루를 취재하기 위해 현지에 갔었습니다. 인구 1만 명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조금씩 바다에 잠기고 있습니다.

쯔나시마 씨는 거기에서 1년 전부터 상주하며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빗물을 받는 빗물통을 수리해주고 해수면 침식을 막기 위해 맹그로브라고 하는 나무를 해안에 심는 것이 쯔나시마 씨의 주요 활동입니다.

저는 투발루가 환경 문제의 상징적이 장소인만큼  외국의 자원봉사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지에 가보니 외국인 자원봉사자는 쯔나시마 씨 단 한 명이었습니다.

방 한 칸을 빌려 지내는 쯔나시마씨의 현지 생활은 단조로웠습니다. 거기는 신문도 방송도 없고, 인터넷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곳입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라고 하니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을 연상할지 모르나, 해수면 상승으로 하얀 모래 사장은 투발루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래사장이 없으니 해수욕을 하는 사람도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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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나시마 씨는 자신의 자원 봉사 활동에 대해 주민들이 감사하면서도 섬사람 특유의 배타성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다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겠지요.

한 달에 한 번 일본에 본부를 두고 있는 환경 단체가 보내주는 잡지를 보는 것이 쯔나시마 씨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재미 없고 단조로운 섬에 올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쯔나시마 씨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것보다는 좀 심심하고 따분하긴 하지만 투발루에 있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주민들이 자신의 봉사 활동에 고맙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끼고, 작은 일이긴 하지만 자신의 일이 투발루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도 했습니다.

도쿄에 있는 환경단체로부터 한 달에 10만 엔이 좀 넘는 돈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활동이 완전한 자원 봉사 활동은 아니라고, 받는 돈은 적지만 돈 쓸 데도 없으니 대학 동기들에 비하면 통장 잔고는 적지 않을 것이라는 농담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런 쯔나시마 씨에게 반했습니다.

야스나리君.

저는 사실 일본의 젊은이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일본 사회 특유의 年長者 문화 때문인지 일본의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에게 짓눌려있는 느낌입니다.

대학 캠퍼스나, 시부야나 하라주쿠에서는 자유 분방하기 그지 없는 청년들이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한결 같이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됩니다.

취업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취업복(recruit suit>이라고 불리는, 마치 교복 같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다닙니다. 그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그래서 길거리에서 취업을 위해 노력 중인 젊은이들은 한 눈에 구별이 됩니다.

마치 "저는 단정하고 말 잘 듣는 청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제는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도 쉽지 않지요.

일본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 가운데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비율은 50%를 겨우 넘는다고 합니다. 또 그 비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정규직으로 직장을 전전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불만과 좌절이 제대로 된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미래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일본이 병들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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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인들에게 '병든 일본'에 대해 말하면 그들도 말합니다. 맞는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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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키워드는 낙관주의입니다.

저는 항상 더 좋은 것은 앞날에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과거도 아름다웠고 현재도 좋지만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앞날에 있다는 것이지요.

어제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다라는 낙관주의 말입니다.

일본이 병들었다고 말했는데, 일본이 걸린 병은 미래가 없는 병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상실한 채 기성사회에 몸과 정신을 맞추기에 급급한 사회, 이런 사회는 분명 병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꼭 일본만의 병이겠습니까만은 일본이 그 어느 나라보다 병의 정도가 심한 것은 그리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투발루의 청년 쯔나시마 씨 같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합니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자신의 현실을 과감하게 뛰어넘으려는 청년, 자신의 활동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고 믿는 청년, 그런 청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본의 병이 빨리 나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야스나리君.

사실 오늘의 이야기는 야스나리군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휴가로 며칠 일본을 비운 사이 제 후임 도쿄 특파원에 대한 모집 공고가 났습니다. 후임 모집 공고는 이제 제가 서울로 귀임할 때가 가까웠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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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기분입니다.

항상 좋은 것은 앞날에, 미래에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고 말했는데 도쿄 이후의 삶이 지금의 삶보다 좋을 것인가하는 회의랄까요,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가 무겁게 느껴졌구요, 왠지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하기는 너무 늦은 것 같은 초조함, 지금까지 익숙한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할 것 같긴 한데 그 길이 지금까지 믿어온 것처럼 어제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란 확신이 잘 들지 않는 불안, 그런 것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날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쓰는 것은, 그런 불안과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것은 앞날에 있다는 믿음을 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아직 10대 후반인 야스나리군과 비교하면 제 나이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저 역시 아직은 청년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네요.

 "좌절 없는 낙관주의를 위해, 일본 청년에게 한국 청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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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윤춘호 기자는 2007년부터 SBS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에서 일했고 특히, 북한 관련 취재와 통일안보분야, 국회 정당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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